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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낯선 세상속으로/해외여행

프랑스에서 만난 아이들 2. 엄마 대신 뽀뽀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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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시 이야기

 

내가 이 집에 이사를 왔을 때 주인집 막내딸 뤼시는 젖병을 물고 기어다니던 아기였다.

그러던 아이가 4층에 있는 우리 집에 혼자 놀러올 만큼 자랐다.

자기 마음에 쏙 드는 옷을 입고

"너무 예쁘네!"라는 감탄사를 듣기 위해 오기도 하고,

부모님이 늦잠을 자는 일요일 아침 같은 때는 뭔가 먹을 것이 없나 해서 오기도 한다.


그녀가 생일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들르는 곳도 우리 집이다.

축하 선물을 받기 위해서이다.

나는 다른 아이들 선물은 생일 당일날 포장을 하기도 하지만뤼시 것만은 잊지 않고 그 전 날 포장을 끝내 놓는다.

왜냐하면 그날 뤼시는 나보다 더 일찍 일어나 선물을 받기 위해 나를 깨우기도 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외출한 부모들을 대신해 내가 아이들을 재웠다.

잠자리에 들려고 하던 뤼시는 목이 마르다며, 내게 물을 좀 가져다 줄 수 없냐고 묻는다.

나는 "물론이지!"하면서 방문을 나서고 있었다.

 

부엌에 가려면 침실을 나와 층을 하나 내려와야 한다.

그런데 뤼시는 주섬주섬 일어나 나를 뒤쫓으며

"어린애 혼자 다니면 위험해. 내가 데려다 줄께."

어이가 없었지만, 나는 "아이고 고마워라!" 하며 즐겁게 웃었고 상냥한 그녀의 손을 잡고 계단을 내려왔다.

계단을 절절 기어다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혼자서 펄쩍펄쩍 뛰어 다니는 그녀를 보면서 세월이 흐르는 것을 본다.

 

다시 침실로 돌아와 동화 한 편을 듣고 나서 뤼시는 이불을 당겨 고개를 파묻다 말고

엄마가 뽀뽀도 해주지 않고 인사도 없이 떠났다고, 갑자기 눈물을 찍으며 내게 말한다.

"엄마 대신 내게 뽀뽀해 줘."

나는 엄마는 곧 돌아올 거고, 내일은 토요일이니 온종일 엄마가 네 곁에 있을 거라고

그녀를 위로하며 양 볼에 입을 맞춰 주었지만그녀의 엄마가 내일 집에 있을지는 의문이다.

물론, 뤼시는 엄마 없는 지금 내게 한없이 상냥하지만내일은 나를 본 척도 안 할 것이 분명하다

(20021014)

 

*이 글은 옛날 프랑스 유학시절에 쓴 글이다.

꼭 10년 뒤 다시 그곳을 방문했을 때, 뤼시는 어느새 중학생이 되어 있었고

지금은 고등학생이다.

그 사이 너무 커서 내가 알던 그 뤼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듯한 괴리감을 느끼게 하는 아이다.

아이들은 정말 쑥쑥 자란다.


아래 사진은 내가 못봤던 시절의 소녀 뤼시 모습!


이 사진은 고등학생인 요즘 모습! 너무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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