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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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프랑스 세트(Sète), 시장의 한 판초콜릿 상점>


 초콜릿의 주원료인 카카오 나무의 열매, 카카오의 탄생지는 멕시코로, 마야, 아즈텍 시대에는 신의 음식으로 추앙받았다. 인간의 피를 대신하는 제물로 바쳐졌으며, 화폐처럼 쓰이기도 했다. 당시 카카오는 100% 야생 카카오를 단순히 볶고 빻아 여러 가지 향신료와 섞은 거칠고 쓴 액체였다.

  스페인의 멕시코 침략(1520년)이후, 침략자들은 카카오의 경제적 가치와 효능에 대해 깨닫기 시작했다. 스페인에 유입된 카카오 음료가 서서히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하자, 착취가 시작되었다. 본격적으로 유럽에 실어나르기 위해 원주민들을 노예화하여, 카카오를 재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카카오는 오랫동안 '음료' 형태이거나 으깨어 굳힌 '거친 반죽' 형태였다. 산업혁을 거치면서 카카오를 곱게 분쇄하고 압착하는 기계가 만들어졌고, 과학의 힘으로 카카오에서 버터를 분리해내면서(1847년) 카카오는 드디어 부드러우면서도 달콤한 '판' 형태의 초콜릿으로 탄생하게 된다. 이것은 1847년의 일이다.

  유럽 열강들은 경제적 가치가 높은 카카오 재배에 열을 올렸다. 그들은 자신의 식민지 가운데 카카오 서식지와 비슷한 환경을 찾아 그곳에 카카오를 옮겨 심었다. 이에 따라 카카오나무는 남미에서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 적도 인근 지역을 중심으로 전세계로 퍼지게 되었다(1860년).


<발렌타인 데이가 다가오면 마트의 진열장은 초콜릿으로 가득 찬다.>


  달콤하면서도 중독성 강한 판초콜릿에 대한 수요는 폭발적이었다. 더불어 카카오 생산이 날로 증가했다. 그에 따라 차츰 더 많은 설탕과 첨가물을 넣어 품질이 저하되기 시작했다. 미식가들은 귀한 카카오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은 품질 좋은 초콜릿을 그리워했고, 1912년, 벨기에의 초콜리티어 노이하우스(Neuhaus)는 이에 부응하여 다양한 크림을 초콜릿으로 감싼 한입 크기의 고급 초콜릿과자 '벨기에 프랄린'을 계발하였다. 

  오늘날은 다채로운 품질과 형태로 더욱 발전하고 있고, 품질의 저하와 환경파괴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기농 재배가 늘어나고 있다. 또 노동력 착취와 같은 어두운 과거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공정무역 운동에 의한 초콜릿 생산 및 소비 운동도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다. 


<고영주, 초콜리티어가 알려주는 57가지 초콜릿 수첩(우듬지, 2011) 14~15 쪽을 참고로 정리> 




초콜릿 수첩

저자
고영주 지음
출판사
우듬지 | 2011-12-25 출간
카테고리
요리
책소개
벨기에 초콜리티어들의 수제 초콜릿 레시피를 소개하며 초콜릿 프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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