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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꽃, 나무 이야기

'빠끄레뜨' (paquerette)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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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는 부활절이 다가올 무렵이면, 온 들판에는 ‘빠끄레뜨’(paquerette)가 핀다. 

빠끄레뜨는 흰색의 작은 데이지 꽃인데, 부활절을 뜻하는 불어의 ‘Pâque’에 ‘귀염둥이’들에게 자주 붙여주는 ‘~ette’가 결합되어, ‘pâquerette’(빠끄레뜨)가 되었으니, 우리 말로 번역하면 ‘부활절동이’쯤 될 것 같다. 

'부활절동이’란 이름답게 부활절 무렵이면, 프랑스 전역이 이 꽃으로 뒤덮힌다. 


물론, 햇볕이 좋기로 유명한 남부 프랑스에는 겨울에도 빠끄레뜨가 핀다. 

옛날 남부 프랑스에서 어학연수 할 때, 나는 이 꽃을 처음 보았다. 

꽃이 피는 따뜻한 겨울이 너무 싫어서 아주 추운 곳으로 떠나야겠다고 결심한 건 바로 빠끄레뜨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코트를 입고 다니면서 빠끄레뜨를 바라보는 것조차 괴로웠다. 

하루라도 빨리 이런 곳을 떠나야겠다고, 겨울에는 코끝이 시리도록 추운, 우리나라 겨울 같은 곳에서 살고 싶다고 결심하고 어학연수를 마치기 무섭게 본격적인 공부를 하러 떠난 곳은 프랑스의 최북단, ‘노르’(Nord)지역이었다. 

그곳도 한국의 겨울만큼 엄청나게 춥지는 않았지만, 추운 겨울을 즐기기에 부족함은 없었다. 


 비가 많이 내리는 긴 겨울이 지나 만물이 다시 피어나는 부활의 계절인 ‘부활절’이 다가오면, 북부 프랑스의 들판은 빠끄레뜨로 가득 찼다. 

나는 그때서야 북부 프랑스에서 가장 먼저 봄소식을 전해주는 빠끄레뜨를 감동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브르타뉴에서 빠끄레뜨를 만났다. 

브르타뉴에서 빠끄레뜨는 봄의 전령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부활절 무렵, 봄 한복판에서 가장 빛나는 모습을 하고 있다. 

브르타뉴에 살았던 동네에도 풀밭이나 공원, 시민운동장의 잔디밭 같은, 온갖 데에 빠끄레뜨가 피었다.

빠끄레뜨는 잔디깎는 기계가 지나가더라도 땅에 꼭 붙어 아주 낮게 자라기 때문에 꽃대는 잘려도 잎들은 잘 베이지 않는다. 

게다가 약간씩 베이더라도 생존하는 데 치명적이진 않다. 

꽃봉오리들 역시 고개를 깊숙히 숙이고 있어서 하루나 이틀만 지나면 썩썩 밀어부친 잔디밭에는 하얀 빠끄레트 꽃들이 고개를 바짝 내밀며 활짝 피어 있곤 한다. 

그의 씩씩함이, 꿋꿋함이 마음에 쏙 들어, 더 귀엽고 반가운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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