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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자살과 자살할 자유 (이경신 철학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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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자살과 자살할 자유'는 이경신의 <철학자와 함께 생각하는 죽음과 삶> 강좌의 한 테마였다.

나는 이 강의를 들으면서 르네상스 말에 등장한 개인이라는 개념이 17~18세기를 거치면서 더욱 발전되고 죄악시했던 자살에 대한 태도도 개인이 강조되면서 조금씩 변해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경신은 이 강의를 통해 스토아학파에서부터 시작해, 그리스 로마, 중세를 거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자살에 대한 관점과 태도가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매우 자세하게 보여 주고 있다.

다음은 그의 강의에 대한 요약이다.


스토아학파에게 있어 자살은 매우 흔했고,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그 시기 의지적 자살은 철학적 자살이라고 예찬받기까지 했다.

그러나 로마 3세기 이후, 자살은 용납되지 않게 된다. 

또 식민지가 많았던 그 시기 식민지 농민을 노예로 생각했고, 이런 점에서 그들의 자살은 '재산상실'을 의미했다고 한다.

거기에 기독교 사상까지 퍼지면서 자살을 더욱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가 중세에 들어, 자살을 죄악시하게 되는데...

신이 주신 목숨을 마음대로 끊을 수 없으며, 기적이 있어서 힘든 상황은 극복할 수 있다.

자살을 했을 경우, 교회에서 파면되었으며 교회묘지에도 묻히지 못하고 장례식도 시켜주지 않았다.

국가적으로는 시체를 모욕하고, 시체에 벌을 주고 자살한 사람의 재산을 몰수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살을 철저하게 반대했는데, 모세 10계명 중 '살인하지 마라!'의 대상에 자신을 포함해, 모든 사람을 살해해서는 안된다는 논리를 적용시켰다.

더욱이 그는 신이 내 운명을 좌지우지하지, 나는 내 운명을 좌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모든 고통을 견디고 신이 부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아우구스티누스의 생각이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 몽테뉴에 이르러 자살에 대한 생각이 조금 바뀐다.

그는 우리에게는 너무 견디기 힘든 고통이 있으며, 그럴 때 자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경신이 이 강의에서 주목하는 철학자는 '칸트'와 '흄'이다.

칸트는 자살할 자유를 인정하지만, 자살을 좋게 보지 않았던 철학자로, 흄은 자살할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으로서 이들을 주목하고 있다.

칸트는 인간을 대상으로 대하지 말고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그의 '정언명법'에 입각해, 자살은 인간을 수단으로 대하는 행동이라고 보았다.

그는 자살의 자유는 있지만, 허용해서는 안된다. 자살은 너무 극단적인 자유다라고 했다.


그에 비해 18세기, 스토아학파의 계보를 잇는 흄은 자살은 신의 섭리를 거스르는 행위가 아니다.

나이가 너무 들거나 병이 들어서 불행하다면 자살할 수 있다. 

신이 인간에게 자살할 자유를 주어서 정말 다행이다.


또 헤겔은 자살할 자유는 있다. 그러나 자살하면 안된다.

왜냐하면, "개인의 정신은 아직 하위에 있는데, '절대정신'에 다달하지 않고 죽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라고 하면서 그의 중요한 철학적 개념이 '절대정신'을 이야기한다. 


20세기에 들어서, 실존주의 철학자인 사르트르는 자살할 자유를 반대한다.

'세계가 부조리함에도 세상 속에서 인생의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까뮈 역시, '부조리'한 세상에 계속 맞서고 반항해야지, 자살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바로 이 시점에서 이경신이 우리에게 소개한 사람은 철학자도 아닌, 20세기의 작가 '장 아메리'(J. Améry)였다.

그는 아유슈비츠에서 살아나온 사람으로,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아메리에 의하면, 자살은 '내 인생은 끝이야!'라는 선언으로, 삶의 가치가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존엄한 선택'이다.

인간은 실존적으로 고독한 존재이다.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 때, 실존적 결단(자살)을 내릴 수 있다.

국가와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 이런 건 모두 부차적이다.


이경신은 장 아메리의 '존엄한 죽음', '개인의 선택'과 같은 개념을 '안락사'와 연결시킨다.

회복할 수 없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존엄한 죽음....

이 지점은 이경신의 안락사에 대한 철학강의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된다.


이날 강의에서 장 아메리를 알게 된 것은 내겐 큰 행운이다.

그리고 이경신에 의해 장 아메리가 새롭게 조명된 것도 매우 고무적이다.

이경신의 <금지된 자살과 자살할 자유> 철학강의는 서양에서 자살에 대한 대중의 관점과 철학적 사색들이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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