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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꽃, 나무 이야기

오대산의 주목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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깎아지른 듯한 오르막, 내리막 길을 몇 번 반복하다가 고개를 곧추 세워도 끝이 보이지 않는 경사길에 당도하면, 비로봉에 거의 다 온 것이다.

그저 먼 발치에서 본, 비로봉 근처에 아직도 꼿꼿하게 서있는 죽은 전나무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가까이서 보고 싶어서 급경사에 성큼 발을 들여놓았다.

그러나 이런 열망에도 불구하고 겨울의 비로봉 자락은 오르기가 너무 힘들다.

내 뒤에서 오던 무수한 등산객들이 모두 나를 지나쳐 갔다.

저 멀리 정상에서 이제 다 왔으니 조금만 힘을 내라는 등산 동호회 사람들의 목소리가 바로 근처에서 들리는 듯 하지만, 비로봉은 쉬이 나타날 기세가 아니다.  


그리고 당도한 비로봉!

비로봉은 오대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그러나 힘들게 올라온 비로봉을 얼른 지나간 건 귀볼을 애는 듯한 시린 바람 때문이었다.

바람이 어찌나 찬지 지체할 수가 없었다.


상왕봉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상왕봉으로 향하는 능선은 비교적 완만해 걷기가 좋다.

하산은 그쪽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



그러나 무엇보다 하산을 상왕봉을 거쳐 내려가는 길로 선택한 것은 순전히 '주목나무' 때문이었다.

비로봉에서 상왕봉 사이에는 아주 나이 많은 큰 주목들이 여러 그루 자라고 있다.

나는 어느 봄에 이 주목나무들을 본 적이 있는데, 눈 쌓인 겨울에 꼭 한번 보고 싶었다.



비로봉을 벗어나기가 무섭게 주목나무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저렇게 자라려면 나이가 대체 몇 살일까?



잎을 모두 떨군 활엽수들 틈에서, 또 하얗게 쌓인 눈밭 위에서 짙은 청록색 잎을 단 주목들만이 도도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정말 설산의 주목은 키치 작품 사진 속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아름다운 모습이다.

너무 빼어나 상투적인, 잘 뽑은 달력 사진의 한 장면 같은...

  


주목을 유달리 좋아하시는 아버지는 오대산에 오셨을 때, 이것들을 보셨을까?

평생 산악회 회원으로 전국의 산들을 다니셨던 아버지가 오대산 기념 손수건을 가지고 계신 것으로 보아, 분명 이곳을 다녀가신듯 한데, 비로봉을 거쳐 상왕봉으로 하산하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주목들을 보셨는지는 모르겠다.

아버지가 이 나무들을 보셨다면, 얼마나 감동하셨을까?

오대산을 다시 와, 힘든 비로봉을 굳이 또 오르게 된다면, 그건 이 주목들을 다시 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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