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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멈춰 서서

냉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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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냉이를 무쳤다.

향긋한 냉이향을 맡으며, 냉이 뿌리의 흙을 깨끗이 털어내기 위해 산물에 찬참을 헹궜다.

봄냉이가 너무 연하고 향그럽다.

20년도 더 전, 친정집 울 안에서 꼼짝 않고 아이와 온종일을 보내던 어느날,

한 심심해 뜰 나무들 밑에 옹기종기 돋아난 냉이를 캔 적이 있다.

그것은 초등학교 졸업후 처음의 일이고,

아장아장 걸음마하는 돌지난 아이를 뜰에 걸리우고,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 냉이를 뜯던 당시 모습은 

냉이를 요리할 때마다 늘 기억 속에서 튀어나왔다.

 

냉이를 뜯던 바로 그날, 아직도 서걱서걱 얼음이 다 녹지 않은 단단한 땅을 가르며 돋아나는

아주 여리고 부드러운 냉이 잎들을 보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한없이 작아져 있던, 당시 내게 다시 일어날 삶의 용기를 준 건 언 땅을 가르며 돋아나던 눈부신 연두빛 냉이 잎이었다.

 

그해 바람찬 봄날, 아이를 보냈다.

 

봄바람이 너무 차가워서였을까?

냉이를 씻던 물이 너무 차서였을까?

마음 저 깊은 데서 물결이 인다.

절대로 닿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수십년이,

아무리 손꼽아도 너무 멀고 막막해 숨이 잠겨왔던 그 세월을 다 빠져나와

내가 어떻게 여기 있는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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