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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꽃, 나무 이야기

시계꽃(passiflore)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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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들은 렌의 우리 동네의 단독주택 담장에 피어있던 '시계꽃'을 찍은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시계꽃이라고 불리는 이 꽃은 프랑스에서는 '파씨플로르'(passiflore)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passion+fleure가 결합된 말이라, '열정', 혹은 '정념'을 뜻하는 passion과 꽃을 뜻하는 fleure가 결합된 만큼, 

나는 이 꽃의 이름을 '열정의 꽃'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게다가 이 이름 때문에 이 꽃을 특히 좋아했다.


그런데... 최근에야 이 꽃의 passion이 '열정'이 아니라 '수난'을 뜻한다는 걸 알았다.

'예수님의 수난'!  그러니 이 꽃의 프랑스식 이름은 '수난꽃'인 것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이 꽃 중앙에 있는 뽀족 튀어나온 세 개의 암술이 예수의 몸에 박은 세 개의 못을 상징한단다.

게다가 중앙의 노란 수술은 예수님의 가시멸류관을 상징한다니, 갈수록 태산이다.

이런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이 꽃은 '수난꽃'이 분명해 보인다.ㅠㅠ

이렇게 비장한 이름의 꽃이었다면, 시계꽃을 특별히 좋아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아주 오랜 옛날 프랑스에서 유학을 할 때, 1년간 살았던 남불의 가정집 뜰 담장은 시계꽃 넝쿨로 이루어져 있었다.

여름부터 꽃이 피기 시작해 가을까지 계속해서 꽃이 피고, 지고...

시계꽃이 가득 피어 있는 담장 아래, 뜰에 펼쳐놓은 야외 식탁에서 늘 저녁식사를 했다.

그 당시의 기억이 너무 좋아 나는 그 집 뜰을 생각할 때마다 시계꽃을 생각했다.


주인 할아버지는 받침목을 세워 벽에도 올리려고 시계꽃을 몇 가닥 뽑아 건물 벽 아래에 심기도 하셨는데,

성장속도가 빠른 시계꽃이 과연 얼마나 그 벽을 타고 올라갔을지 궁금하다.

그곳을 떠난 뒤 한번도 다시 가보지 않아, 나는 그 집 뜰도, 시계꽃 담장도 더는 보지 못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문득문득 시계꽃을 발견할 때마다 옛날, 그 뜰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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