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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낯선 세상속으로/브르타뉴

로리앙(Lorient), 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프랑스의 항구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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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로리앙'(Lorient)을 구경하러 가겠다는 말을 한 호텔 지배인에게 했을 때, 그는 로리앙은 볼 것이 하나도 없으니 안 가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지도에도 커다랗게 표시된 유명한 도시에 왜 구경할 만한 것이 없다고 하는지 우리 눈으로 꼭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찾아간 '로리앙'(Lorient)!

정말 볼 것이 없다...ㅠㅠ


도시는 고풍스러운 건물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었고, 훵한 대로와 현대식 건물들로 채워진 평범한 도시에 지나지 않았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찾아보니, 로리앙은 세계 2차 대전 중에 연합군의 폭격을 당한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2차 대전 당시, 대서양을 면하고 있는 브르타뉴는 독일해군의 주요기지들이 자리잡게 된다. 

브레스트가 이에 해당되는 도시였으며, 역사적으로 항구가 매우 발달한 로리앙 역시 피해갈 수 없었다. 

2차 세계 대전 때 독일군은 로리앙을 점령한 뒤, 그곳에 엄청난 규모의 잠수함기지를 건설한다. 

이 잠수함 기지를 폭발시키기 위한 연합군의 폭격이 두 차례 진행되었는데, 첫번째 공격은 1942년 1월 14일에 벌어졌다. 

3시간 동안 공격에 로리앙의 1/4이 불탔다. 그리고 이어서 1943년 1월 15일에 두번째 공격이 있었다. 

이 폭격은 더 무시무시하고 긴 기간 동안 벌어졌다. 그때 쏟아진 폭격과 포탄으로 집들은 화마에 휩싸였으며, 하늘은 폭발로 인한 불꽃과 포탄의 폭발 소리로 뒤덮혔다. 

이따금씩 비행기는 따닥따닥 소리를 내는 기관총을 쏘아댔다. 

1943년 1월부터 2월 중순까지 1달간 계속된 이 폭격으로 4천톤의 폭탄이 로리앙에 투하되었으며, 도시의 85%가 파괴되었다고 한다.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 뒤, 8월 브르타뉴는 독일군으로부터 해방되었지만, 로리앙 둘레에선 전투가 계속되었다. 

‘로리앙 부대’(Poche de Lorient)라고 불렸던 유명한 독일부대는 계속 저항하다가 1945년 5월 10일에야 항복을 했다.

로리앙은 폭격 후 볼품없는 현대적인 건물들로 재건되었다. 

그런 까닭에 오늘날 관광할만한 명소들은 거의 없다. 

로리앙은 이런 상황을 ‘로리앙 켈트문화 페스티벌’(Festival interceltique de Lorient)을 개최함으로써 슬기롭게 극복한 것은 특이할만하다. 

로리앙은 1971년부터 이 축제를 열어, 유럽에서 페스티벌로 중요한 도시 중 하나로 떠오르게 되었다. 

매년 여름에 열리는 이 축제를 보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관광객들이 로리앙으로 몰려든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로리앙은 독일의 잠수함 기지가 있었던 역사적 배경 때문에, 오늘날 프랑스 ‘원자력 추진 잠수함(sous-marin à propusion nucléaire)기지가 세워져 있다. 

 

바다는 로리앙의 이런 슬픈 현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요하기만 하다.



* 만약, 폭격전 로리앙의 옛모습이 궁금하다면, 아래 포스트를 참고하세요~^^

프랑스 로리앙의 옛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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