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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낯선 세상속으로/국내여행

청계천에 존재했던 판자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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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가장자리에 난 산책로를 걷다가 발견한 저건 그냥 보기에도 흥미를 끄는 구조물이었다.

무슨 전망대인가?

너무 궁금하다. 바짝 다가가 보니 궁금증이 더해갔다.

판자들로 얽기설기 만든 신기해 보이는 저걸 보기 위해 굳이 가던 길을 멈추고 둑 위로 올라갔다. 

둑을 올라가니, 드디어 실체가 공개되었다.

바로 청계천 가장자리에 세워져 있던 판자집 모형들이었다.

청계천 박물관 앞에 과거 청계천가에 존재했다던 판자집들을 재현해 놓은 것이었다.

말로만 듣던 바로 그 청계천가 판자집이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더 신기하기만 했다.

판자로 지은 이런 집에서 어떻게 살았나, 신기할 뿐이다.

제대로 된 위생시설이나 상수도 시설이 있을리 만무해 보인다.

이렇게 체험관 형태로나마 판자집들을 복원해 놓은 것은 교육적인 가치가 있어보인다.

너무 비참한 우리의 과거지만, 우리의 역사의 한 토막이고 이곳에도 삶이 있었다는 걸 잊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이런 주거조차 없었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마저도 좋아보인다.

청계천 박물관 앞에 마련된 판자집 체험관을 둘러보고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니, 좀더 구체적이고 자세한 청계천 판자집들의 모습과 역사를 알 수 있었다.

위 사진은 청계천가에 세워졌던 판자집 모형이다. 

당시 판자집들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박물관에 쓰여진 설명에 의하면, 1960년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시골에서 일자리를 찾아 올라온 사람들이 청계천가에 무허가 판자집을 짓고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것을 1970년대에 들어, 청계천을 복개하고 삼일고가도로를 만들면서 이곳에 살던 사람들을 경기도 광주, 허허벌판으로 집단 이주시키는 것으로 청계천 판자집의 역사는 끝이 났다.

그러나 비인간적인 조건의 광주 대단지는 인권유린의 한 현장이 되었고, 도시빈민의 문제는 해결되기는 커녕 더욱 심각해져만 갔다.

게다가 아파트 단지 건설과 함께 불어닥친 도심재개발 과정 속에서 무수히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내쫓기고 그들의 보금자리로부터 폭력적으로 떠나야했다.

이런 비극적인 역사의 한가운데 청계천 판자집들이 존재한다.

자칫, 전혀 알지 못하고 지나쳤을 우리의 소중한 역사의 한 장면인 청계천가에 존재했던 판자집들을 직접 보고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과 역사를 살펴볼 수 있었던 건 매우 유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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