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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낯선 세상속으로/브르타뉴

'브레스트'(Brest), 대서양으로 향한 거대한 항구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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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당시 브르타뉴는 독일군의 주요군사시설들이 있었다는 이유로 연합군의 폭격을 받은 도시들이 상당히 많다.

그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겪은 곳이 바로 ‘브레스트’(Brest)이다. 


브레스트는 1940년 6월 19일 독일군이 점령한 이래, 독일 해군 잠수함 기지가 자리잡았다. 

그런 탓에 1940년~1944년 동안 수많은 폭격과 공습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965명이 사망하고 740명이 심하게 다쳤는데, 그 가운데 371명이 1944년에 있었던 연합군의 폭격으로 사망한 사람들이다. 


20세기초까지만 해도 브레스트는 낭트 다음으로 브르타뉴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였다. 

루이 16세때 부터 선박생산과 해군의 도시로 활기가 넘치는 곳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폭격으로 도시의 95%가 파괴되고 만다.


1944년 8월 7일부터 9월 8일까지 45일간 진행된 폭격에 3만개의 폭탄이 투하되고 만개의 포탄이 투척되었다고 한다. 

브레스트에는 폭격 전에 존재했던 1만 6천 5백 채의 건물 중 2백채만 남았고, 중심가에는 단 네 채만 존재했다고 한다.



나는 브레스트를 방문했을 때, 도시에 고풍스러운 옛 건물을 찾아보기 힘든 것에 많이 놀랐다. 

폭격을 당한 도시인 생말로만 해도 거의 완벽하게 옛모습을 복원한 것을 보았기에, 미적인 데라고는 하나도 없는 사각형의 시멘트 건물들로 가득 찬 도시는 관광객에는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브레스트는 «우리는 절대로 관광으로 돈을 벌지 않을 테야!»라고 굳게 선언한 도시같은 인상이었다. 



나는 그런 브레스트가 잘 이해되지 않아, ‘왜 저렇게밖에 도시를 복원하지 못했을까?’하며, 안타까워 했다. 

그런데 엄청난 규모로 도시가 파괴된 탓에 주민들에게 한시라도 빨리 생활 터전을 마련해 주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설명을 듣고나니, 브레스트의 상황이 바로 이해가 되었다. 



다행히 브레스트성은 폭격에 파괴되지 않고 건재하며, 현재 다리 건너편, 다리로 연결되기 전에는 외곽에 지나지 않았던 ‘뷔에이유 빌’(Vieille ville: 옛날 도시)구역에 존재하는 건물들에서 폭격전의 브레스트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옛날에도 그랬지만, 오늘날도 여전히 브레스트는 대서양으로 활짝 열린 프랑스의 중요한 항구도시이다.

이곳으로 세계 각지로 향하는 물류들이 나가고 들어온다. 

물론, 거대한 고깃배들이 출발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 항구도시답게 바닷가에는 거대한 크레인과 물류창고, 공장들로 보이는 산업시실들이 빼곡하게 자리해 있다.

브르타뉴의 어떤 항구도시들보다 산업활동으로 활기있어 보이는 인상이다.



이 건물들은 ‘뷔에이유 빌’ 근처에 있는 공장 모습이다.

2차대전의 폭격을 피한 옛날 공장 건물들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고전적인 형태의 공장건물이 멋져 보였다.

과거에도 브레스트가 얼마나 산업적으로 활기있는 도시였는가를 보여주는 흔적들이다.


브레스트는 어디 한군데 관광객을 끌만한 아름다운 풍경이 없는데도 나는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

그것은 관광객에 의지해 있는 도시에서 느끼는 나른한 인상을 브레스트에서는 찾아볼 수 없어서였던 것 같다.

유색인종이 많고, 거리에는 젊은이들도 많다. 

게다가 서민들의 땀에 젖은 노동으로 도시가 운영되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다.

브레스트는 프랑스의 멋진 광광지가 아니라, 그저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이웃 도시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다.

언젠가 기회가 되어서 브르타뉴에서 좀더 살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는 브레스트에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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