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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퓌스 사건, 재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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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렌(Rennes)은 진보적 성향의 도시로 유명하다. 노동, 인권 단체의 다양한 행사와 활동이 1년 내내 활발하게 펼쳐진다. 

이러한 분위기가 그냥 생겨난 건 아니다. 그 기원은 19세기 말 제 3공화정 시대, 프랑스를 정치 사회적으로 큰 혼란에 빠뜨렸던 드레퓌스 사건과 관련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렌은 드레퓌스의 두 번째 재판이 열린 곳이다. 

사진속 건물이 바로 당시 드레퓌스 재판이 열린 곳으로 현재는 고등학교로 사용되고 있다.



1894년 알자스 출신의 유대인 육군장교였던 알프레드 드레퓌스(Alfred Dreyfus)는 독일에 정보를 빼돌린 첩자로 모함을 받고 무기징역에 처해진다. 

그러나 그뒤, 무죄를 입증하는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고 드레퓌스의 재심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특히, 지식인 사이에서 프랑스의 반유대주의와 비이성적인 국가주의를 비판하면서, 드레퓌스의 구명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졌다. 


에밀 졸라, 조르쥬 클레망소, 쟝 조레스, 드레퓌스의 맏형인 마티유 드레퓌스 등이 앞장서 그를 구하고자 노력했다. 

그 중에서도 프랑스의 대 문호, 에밀 졸라는 1898년 «나는 고발한다 »라는 글을 발표하며 공개적으로 재심을 요구했다. 

졸라의 이 행동은 국가의 부정의함을 지식인들이 적극적으로 비판해야 한다는 전통을 심어준 출발점이 되었다. 

드레퓌스 사건은 프랑스의 진보와 보수 진영의 치열한 정치투쟁을 촉발시켰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드레퓌스의 두번째 재판이 렌에서 열리게 된 것이다. 

재판이 열린 곳은 현재 쟝비에 대로(avenue Janvier)에 위치한 ‘에밀 졸라 고등학교’(Le lycée Emile Zola)로, 당시에도 렌에서 중등교육을 담당하고 있었다. 

1899년 8~9월 사이, 한 달 간 열린 이 재판을 취재하기 위해, 미국, 러시아, 스웨덴, 터어키, 아르헨티나 등, 세계 각지에서 200명이 넘는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당시 렌 주민 대부분은 드레퓌스에게 적대적이거나 냉담한 입장이었고, 오직 한 무리의 주민들만이 광적인 반유대주의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였다. 

대학생들이 중심이 된 이 선두에 빅토르 바슈(Victor Basch: 헝가리 출신 철학자, 인간권리 연맹 대표이면서 공동 창설자)가 있었고, 이들의 활동은 ‘인간권리 연맹’(la Ligue des droits de l’homme)의 렌 지부 탄생을 이끌어냈다. 


‘공화주의 vs 국가주의’, ‘인도주의 vs 반유대주의’가 격돌한 치열한 정치투쟁에서 렌의 큰 흐름은 보다 공정하고 인도주의적인 편으로 향한다. 

역사를 거치면서 렌은 다른 어떤 곳보다 진보적인 도시로 스스로를 정체화시켜 나갔다. 오늘날 렌은 사회당 세력이 매우 강하고 노동자들의 힘이 강한 도시로 유명하다. 


드레퓌스에게 1899년 재판에서 유죄가 내려지지만, 같은 해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풀려나 1906년 에는 비로서 무죄를 선고받고 복권된다. 

드레퓌스 사건은 여론과 언론, 국가의 반이성과 불공정성의 상징으로 평가되고 있다. 

 


나는 렌을 떠날 때는 구시가지 작은 골목길에 총총 서있던 예쁜 꼴롱바주 집들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것에 심한 안타까움을 느꼈지만, 귀국한 뒤에는 우리가 맞닥뜨려야 했던 어처구니 없는 정치적 사건들 속에서 렌의 진보적인 도시 분위기가 부러웠다. 

멈추지 않고 열리는 진보적인 문화, 학술 행사와 시민들의 높은 정치의식! 그 뒤에 에밀 졸라나 빅토르 바슈 같은 조상들이 있었다는 걸 잘 모르고 있었다. 


실제로 졸라는 « 나는 고발한다 »라는 글을 쓴 얼마 뒤 의문사를 당했고, 유대인인 바슈는 1944년 세계 제 2차 대전 뷔시 정권 하에서 프랑스 민병대에 의해 아내와 함께 살해된다. 

이처럼 합리적인 이성과 인권신장을 향한 목숨 건 사람들의 발걸음이 지금의 렌, 아니 프랑스를 만들었으리라. 


우리도 바로 그런 조상이 되어줄 수 없을까? 

후손들에게 자랑스럽게 기억될 그런 조상이, 바로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오늘날 수혜를 받고 있는 렌 시민들보다 우리가 더 운이 좋은 위치에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허풍스러운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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