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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낯선 세상속으로/브르타뉴

반느(Vannes)의 성곽(remparts)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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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반느(Vannes)를 이야기할 때, 성곽을 빼놓을 수는 없다. 반느의 가장 중심가는 성곽으로 잘 둘러쳐져 있다. 

3세기, 로마인에 의해 도시는 성벽으로 둘러싸인다. 

이 성벽은 이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건립되었다고 하는데, 당시 흔적을 아직도 성곽 일부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성곽은 14세기 말에 재건된다. 



반느는 오랫동안 공작령 도시였다. 

1341년부터 1364년 사이에 있었던 ‘브르타뉴의 계승전쟁’(Guerre de Succession de Bretagne)으로 공작은 파산을 하고, 두 공작 가문 사이의 싸움에서 반느는 쟝 4세에게 여러 차례 포위당하는 일을 겪는다. 

이 계승전쟁의 승리자인 쟝 4세는 반느에 ‘에르민느 성’(Château d l’Hermine:1380~1385년)을 건설하는데, 성의 건설과 함께, 이미 존재해 있던 도시의 성벽을 확장하기 시작한다. 

반느의 성곽 확장 공사(14~15세기)는 쟝 5세까지 이어진다. 성벽이 남부, 항구가 있는 지역까지 넓혀지면서 반느는 매우 활기 넘치는 도시가 된다. 

현재 성벽은 1928년부터 역사 문화유산으로 분류되어 보호되고 있다. 




한편, 공작의 주거를 목적으로 세운 ‘에르민느 성’은 아직도 성벽을 끼고 그 위용을 자랑하며 서 있다. 

성의 이름인 ‘에르민느’는 ‘흰담비’를 뜻하는 단어로, 흰담비는 1381년부터 브르타뉴 공작 가문의 공식 문장으로 사용되었다. 

이런 이유로 흰담비는 반느의 상징이 되었고, 이후에는 브르타뉴의 상징으로 발전한다. 

오늘날도 브르타뉴의 많은 지역의 도시문장에는 흰담비가 그려져 있고, 브르타뉴의 깃발에 새겨져 있는 검은 무늬 역시 흰담비를 형상화한 것이다. 


동쪽 성벽 밖으로는 식물들을 기하학적인 모양으로 손질한 전형적인 프랑스식 정원이 넓게 자리해 있다. 

그곳에서는 시민들을 위한 행사들이 많이 벌어지는 듯 했다. 내가 반느를 방문한 날도 한 사진작가의 전시회가 그 정원에서 열리고 있었다. 


내 생각에 반느 성곽의 가장 특색있는 점은 성벽에 딱 달라붙어 있는 집들이 아닌가 싶다. 

성곽의 3/4이 보존되어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 둘러볼 수 있는 부분은 그에 훨씬 못 미친다. 

지도를 들고 탑들을 둘러보고, 올라갔다 내려갔다하며 성벽을 따라 걷다가, 툭 끊어진 자리에 도착했다. 

분명 성벽이 존재한다고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는데, 감쪽같이 사라져 잠시 우왕좌왕했다. 

이 작은 도시에서 길을 잃었을리도 없는데, 성벽이 사라진 것이다. 



그냥 포기하고 주변 상점을 기웃거리며 걸음을 이어나갔다. 

그러다가 다시 한 작은 성문이 보여 가까이 가보니, 그 주변으로 성벽이 둘러져 있었다. 성벽이 집들 사이에 숨겨져 있던 거였다. 

그 근처 집들은 모두 성벽에 바짝 붙어 옹기종기 자리해 있었다. 

그러나 울 안 깊숙하게 숨겨진 성벽을 확인할 길은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조사해보니, 17세기부터 ‘포테른느 문’(Porte Poterne)주변은 집을 지을 수 있도록 성곽의 일부를 팔거나 임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성벽을 제대로 볼 수 없는 것은 안타깝지만, 성곽이 주택가 속에 숨겨진 도시도 흔한 것은 아니어서 재미있게 생각되었다. 



실제로, 브르타뉴를 여행하다 보면 성곽 위에 떡하니 얹혀져 있거나 성벽에 몸을 기댄 집들을 발견하기가 어렵지 않다.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슬쩍 성벽에 기대거나 과감히 성곽 위로 올라가 집을 지었던 그들... 

난 이런 집들을 좋아한다. 집을 지은 사람들의 천진스러움이 늘 투박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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