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르타뉴의 포도재배와 포도주 역사

여행, 낯선 세상속으로/브르타뉴


<브르타뉴도 포도주 생산지였음을 알리는 흔적으로, 렌의 한 주택 대문에 장식된 조각>


프랑스는 거의 많은 지역이 포도주의 생산지이지만, 서북부 브르타뉴 지방에서는 포도주가 생산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곳이 옛날에도 그랬던 것은 아니다. 

브르타뉴 지방에도 포도밭이 있고 포도주가 만들어졌던 때가 있었다. 

그리스인들로부터 시작된 포도재배가 지중해를 거쳐, 프랑스에 자리잡게 된 것은 기원전 12세기의 일이다. 

초기만 해도 달달한 이 과일은 대중적인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즙을 짜서 발효시킨 음료에는 열광했다. 로마 식민지였던 서기 1세기에 들어, 이 덩굴식물의 재배는 식민지 끝까지 전파된다. 



브르타뉴의 게랑드(Guérande)근방, ‘피리악-쉬르-메르’(Piriac-sur-Mer)에서 압착기가 발견되었는데, 이 압착기는 서기 1~3세기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하되 있다. 

브르타뉴에서 사과주가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르네상스에 들어서이고, 당시 올리브는 존재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압착기는 포도주와 관련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중세에 들어서 포도밭은 브르타뉴 각자로 넓혀진다. 

‘모를래’(Morlaix)에서 ‘랑데베네’(Landévennec)와 ‘크로종’(Crozon)반도까지, 또 ‘뽕-스크로프’(Pont-Scroff)에서 ‘돌-드-브르타뉴‘(Dol-de-Bretagne)까지, 브르타뉴 전 지역에 걸쳐 포도가 재배되었다. 

그러나 보르도나 브르고뉴 지방만큼 포도주 생산이 활성화되지는 못했다. 

기후탓에 포도주 품질이 나빠서 포도주는 그저 미사를 위해 쓰였고 포도밭도 수도원에 속해 있었다. 

그러다가 13세기부터 브르타뉴에서 포도재배는 쇠락의 길을 밟는다.        



<르푸(Lefaout)의 한 포도주 가게, 이 지역 특산품 포도주를 판매하는 곳인 듯 했다. 상점 앞에 심어진 포도나무가 인상적이다.>


17세기에 들어, 프랑스에서는 브르고뉴지방의 포도주가 이름을 떨치게 되고 보르도, 랑그독, 루시옹, 샤랑트, 발-드-루와르 같은 지역들이 그 뒤를 따른다. 

이 시기, 노르망디 지방 동쪽까지 포도재배가 넓혀진다. 

그러다가 1880년대, ‘포도나무뿌리 진디병’(phylloxera)이 프랑스 남부를 침범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로 인해, ‘샤랑트’(Charentes)의 꼬냑 생산이 크게 줄었다. 

진디물이 아직 북쪽까지 번지지 않는 틈을 타, 브르타뉴의 ‘뤼스’(Rhuys)에서는 샤랑트의 꼬냑과 경쟁할만한 증류주를, ‘랑스’(Rance)지역과 ‘러동’(Redon)에서는 백포도주를 생산했다. 

특히, 낭트(Nantes)근방에서는 ‘그로 플랑’(Gros Plant)과 ‘믈롱 드 부르고뉴’(Melon de Bourgogne)라고 이름 붙여진 주목할만한 포도주를 생산하게 된다. 


하지만 1900년, ‘포도나무뿌리 진디병’이 브르타뉴에도 번지고, 결국 10년 뒤 포도재배는 모두 실패하고 만다. 

겨우 보존된 품종들과 미국의 포도나무에 접붙힌 포도묘목들을 가지고 프랑스 전역에서 포도재배가 조심스럽게 다시 시작된 것은 1920년부터였다. 

이렇게 다시 생산을 시작한 포도주가 20세기를 관통해, 생산과잉의 단계까지 성장해가는 과정 속에서 브르타뉴의 포도재배와 포도주 생산은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낭트지역을 제외한 브르타뉴 지방의 포도재배는 점진적으로 사라져갔다. 

지금은 포도 재배지는 거의 없고 브르타뉴에서는 사과를 이용해 만든 시드르의 생산지이고, 이곳 사람들도 시드르를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