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Rennes)의 사라진 성벽이야기

여행, 낯선 세상속으로/브르타뉴



이 지도는 지금은 사라진, 옛날 렌(Rennes)시내를 둘러싸고 있던 성곽을 표시한 지도다. A,B,C, 순서로 축성되어, 브르타뉴가 프랑스에 합병된 뒤에 모두 파괴시켰다고 한다. 사라진 국가의 슬픈 운명을 보는 것 같아, 이런 기록을 읽을 때는 늘 마음이 아프다.


이 사진은 지금 발굴, 복원 중인 <모르들레즈 문들> 앞에 세워진 안내판을 찍은 것이다. 햇빛에 반사되어 사진 찍기가 정말 힘들었는데, 다행히도 이 사진은 정말 잘 나왔다. 


브르타뉴의 도시들은 성곽형태를 띤 곳이 많다. 특히, 정치적, 군사적 역할이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도시는 어김없이 높고 튼튼한 성벽으로 둘러쳐져 있는데, 렌처럼 역사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도시에 성벽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러나 옛날, 렌에도 성곽이 존재했었다. 우리는 그 흔적을 시내 중심가의 한 '성채'(châtelet)에서 찾을 수 있다.  



렌 시내에는 ‘모르들래즈 문들’(Les portes Mordelaises)이라고 불리는 유적이 있다. 이것은 도개교에 양쪽에 두 개의 망루와 중앙 문 위에는 생활 공간을 갖춘 전형적인 성채(châtelet) 형태를 하고 있다. 이 문들을 통과하면, 바로 대성당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브르타뉴 공작들과 주교들이 렌으로 공식적인 입성을 할 때 사용되었던 문으로, 대성당에서는 그들의 입성을 축하하는 환영행사가 벌어졌다. 1491년 12월, 프랑스의 왕 샤를르 8세와 안느 드 브르타뉴 공작이 결혼을 하고 렌을 방문했을 때, 그들을 처음 맞은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이 성채는 15세기에 고대로마시대에 세워진 옛 성벽의 기초 위에 세워졌다. 렌에는 서기 1~3세기에 건설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성벽이 존재했었다. 도시를 둘러쌌던 그 성벽은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의 노선과 외형을 살펴볼 때, 약 14개 정도의 탑과 4 개의 문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저 문이 하나 존재하는 성채를 ‘모르들래즈 문들’이라고 복수형태로 지칭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다가 15세기, ‘모르들래즈 문들’은 새로운 도약을 맞게 된다. 1421~1448년 장4세(Jean IV)공작은 렌에 새로운 방어벽을 건설한 것이다. 새로운 축성을 통해, 성벽은 생-게오르쥬(Saint-Georges) 수도원과 생-제르맹(Saint-Germain)성당까지 넓혀지고 8m 높이의 성벽에 12개의 탑이 새로 생기고, 성벽에는 구멍 뚫린 문들도 여러 개 세워졌다. 그리고 옛 성벽에 존재했던 문들도 새롭게 건설되는데, 이때 ‘모르들래즈 문들’이 현재의 성채 형태로 고쳐진 것이다.


성벽 축성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1449~1476년에는 세번째 공사가 전개된다. 이 세번째 성벽이 건설되면서 도시의 방어벽은 렌 끝까지 이어지면서, 도시는 방어벽으로 넓게 둘러싸이게 된다. 


그러나 17세기 초, 렌의 성벽들은 무너지게 된다. 프랑스의 왕 앙리4세(Henri IV)는 1602년 렌의 성벽에 세워진 탑들과 문들을 모두 파괴시킬 것을 명령한다. 다행히, 당시 ‘모르들래즈 문들’은 대위(capitaine)의 주거용으로 사용된 덕분에 그 존재를 유지할 수 있었다. 게다가 루이13세(Louis XIII)는 1636년부터 외호와 보루, 성벽들을 팔 것을 허락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렌의 성벽과 그곳에 존재했던 모든 탑과 문은 자취를 감추게 된다. 그저 오늘날에는 모르들래즈 문들 사이에 존재하는 외호와 두 망루, 그리고 고대 로마시대에 건설된 약간의 성벽 등, 몇몇 유적들만 존재할 뿐이다.   

 

나는 성곽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한켠에 덩그러니 서 있는 모르들래즈 문들을 볼 때마다 패망한 나라의 비운을 확인하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좋지 않다. 겹겹이 도시를 둘러 싼 견고한 성곽들이 프랑스 왕국에 불안을 주었던 걸까? 혹시 저항군이라도 조직된다면, 요세화하기 너무 좋은 이 도시의 성곽을 그냥 존재하도록 놔둘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