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정문앞 이한열 열사 기념동판

문득, 멈춰 서서

​1987년 민주화운동이 벌써 29년 전의 일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세월이 흘렀다.

마침 6월 10일이 되니, 미디어에서는 29년 전 6.10민주화운동 소식을 일제히 전했다.

다른 때와 차이가 있다면, 올해는 당시 최루탄 직격탄을 머리에 맞고 숨진 이한열 열사를 추모하는 기념동판이 연세대학교 앞에 건립되어었다는 소식이 덧붙여졌다.

나는 마침 연세대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신촌에 갔다가 일부러 연세대 앞에 건립되었다는 동판을 보러갔다. 

​29년전 이한열열사가 목숨을 잃었던 당시 나도 이한열열사와 같이 대학 2학년이었다.

대학교 2학년밖에 안되는 젊은 나이에 경찰이 쏜 최루탄을 맞고 의식불명에 빠진 이한열 열사가 사경을 헤매는 동안 전국은 민주화운동으로 뜨거웠다.

최루탄은 사람에게 직접 겨누어서는 안되며, 45도 각도로 공중에 쏘게 되어 있었다.

그것을 직접 사람에게 겨눈다는 건 죽으라고 쏘는 총알과 다를 것이 없었다.

6월 9일 연세대 집회에서 이한열 열사는 시위대를 향해 몰려오는 정경들을 피해 뒤돌아 교문안으로 도망가 들어가다가 뒤통수에 최루탄을 맞고 쓰러졌다.

정황상 이는 명백한 살인행위였다.

폭력경찰과 폭력정권에 의해 한 청년의 피지 못한 인생이 스러져갔다.

그 다음날인 6월 10일 국민총궐기일부터 '호헌철폐, 독재타도(대통령 직선제개헌)' 구호와 함께 거리의 시민들은 '한열이를 살려내라!'고 한목소리로 외쳤다.

그의 죽음에 분노한 시민들이 없었다면, 그렇게 많은 국민이 한목소리로 민주주의 회복을 외치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당시 대통령직선제를 획득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바로 이 자리가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자리라고 한다.

열사가 쓰러진 자리에 동판이 새겨졌다.

교문 안이 아니라 교문 바로 밖에서 최루탄을 맞았다는 걸 오늘에야 확인했다.

이한열 열사 29주기를 맞아 이한열기념사업회가 주관하는 특별행사들이 여러 곳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이 그림은 당시 화제가 되었던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은 직후, 옆에 있던 동료가 그를 부축하는 모습이 담긴 신문에 실렸던 사진을 가지고 그린 것이다.

그 사진을 토대로 그린 판화풍의 커다란 이 걸개그림이 그의 장례식이 있던 7월 연세대 도서관 앞에 내걸렸다.

역사가 된 사진, 역사가 된 사람들...

29년만이라 하더라도 이렇게 이한열 열사를 추모하는 동판이 새겨져 그를 기억할 수 있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