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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노래하다, 고려시대 금석문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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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중순부터 예술의 전당에서는 '죽음을 노래하다'라는 제목으로 전시회와 4회에 걸친 강연이 펼쳐지고 있다.

그중에서 흥미로운 테마의 강연을 들으러 갔다가 전시회도 구경을 갔다.

전시회는 '가나아트' 이호재회장이 기증한 탁본들으로, 고려시대 금석문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들이라고 한다.

​전시된 것들은 고려시대 사람이 죽었을 때 시신을 담은 석관과 탁본, 묘비명과 비석등, 죽음과 관련한 유물들이었다.

​이것은 모두 비석을 탁본한 것이다.

유명한 사찰에 세워진 비석들이라고 한다.

​이들과 더불어 조금 생뚱맞지만,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의 탁본도 전시가 되었다.

​성덕대왕신종에 새겨진 비천상이 너무 아름답게 탁본이 되었다.

​이건 묘비명이다.

역시 고려 의종 3년(1149년)에 만들어진 윤언식의 묘비명(개인소장)이라고 한다.

​이것은 고려시대 매장에 쓰였던 석관이다.

이 석관앞에는 이런 설명이 쓰여 있었다. 

고려국 북부관할 내 천왕 일리에 거주하던 대악서 서리 연후영은 정풍 5년(1160) 견진년 5월 11일에 생을 마치거늘, 이후 같은 해 8월 15일에 유골을 수습하여 안장한다.

이 기록으로 보아, 고려시대에는 사람이 죽으면 가매장했다가 뼈만 수습해서 이러한 석관에 묻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 석관에는 사면에 사신도(현무, 주작, 청룡,백호)가 조각된 것도 특징이다.

특히, 고려 석관의 그려진 사신도는 청룡과 백호는 척목이 사라지고 등지느러미가 출현하며, 등이 활처럼 솟아오른 자세가 새로운 변화라라고 한다.

'척목'은 안타깝게도 무슨 뜻인지 몰라 아쉽게도 이해를 할 수 없었다.ㅠㅠ

또 주작과 현무는 과거 측면만을 묘사하던 것애 비해 정면형 자세로 표현된 것도 변화된 양식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석관에 그려진 주작이 모두 정면을 향해 날개를 활짝 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석관은 이렇게 두꺼운 뚜껑으로 덮는다.

​이것들은 모두 고려시대 석관을 탁본한 것이다.

​사신도의 형태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석관 탁본들이다

'죽음을 노래하다' 고려시대 금석문 전시에서 내게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뭐니뭐니 해도 석관들이다.

고려시대 사람들이 매장에 석관을 사용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고, 거기에 사신도가 새겨졌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무엇보다 불교신자였던 고려인들이 화장을 하지 않은 것도 궁금했다.

화장은 승려들에게만 해당하는 의식이었나? 일반서민들은 이런식의 매장을 선호했던 걸까?

궁금증이 쉬이 가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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