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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멈춰 서서

이수복의 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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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우리 동네 도서관 종합자료실 책꽂이에 붙어있는 것을 찍은 것이다.

우리 동네 시립도서관에는 책꽂이 옆에 이렇게 시들을 한편씩 붙여 놓았다.

그 시들은 한번 읽어보면 좋을 감수성 넘치는 것들이 많다.

그래서 나는 가끔 책을 고르다 말고 이 시들을 읽곤 하는데, 마침 이수복의 '봄비'를 발견한 것이다.

이 시는 내가 고등학생일 때 교과서에 실려 있던 것이다.

교과서에 실린 시들은 감동적인 것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그때 배운 것이 무엇들인지 기억에도 없는데, 이수복의 '봄비'만은 당시에도 좋아했던 시다.

이수복의 '봄비'는 배우면서 눈물이 날 것 같은 목메임을 경험했던 몇 안되는 시 중 하나다.

이 시를 가르쳐 주셨던 국어선생님도 말씀하셨지만, '향연'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서정적 자아'의 연인(님)은 죽었다.

봄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가 님 앞에 피어나던 향로의 연기에 비유되는 지점에서는 슬픔이 극치에 달한다.

그러나 그는 슬픔을 구구절절 청승을 떨며 늘어놓지 않고, 바로 그 지점에 '딱!' 끝낸다.

그래서 더 슬프다.

님이 왜, 어떻게 죽었는지도 서술되어 있지 않다.

그저 죽은 님을 떠올리리게 하는 봄을 이야기할 뿐이다.

이수복은 '봄비'에서 너무나 담담하게 떠난 님을, 봄을 이야기한다.

슬픈 봄~

지금 다시 봐도 여전히 이 시는 너무 슬프다.


봄비

                               이수복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

푸르른 보리밭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어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

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

향연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랑이 타오르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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