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 등반을 하러 갔을 때는 갑사가는 길에 있는 말채나무에 새 잎이 나기 전 4월 초, 어느 흐린날이었다.
신령스럽게까지 느껴지는 키큰 말채나무들 사이를 제법 걸어야 갑사가 나타난다.
갑사 근처에서 계룡산 산행을 시작하려면 갑사를 관통해 가는 것이 정해진 코스이다.
갑사의 멋진 풍경을 관람하면서 산행을 시작할 수 있으니, 이 또한 좋다.
갑사 경내에 드러서자 벚나무엔 벗꽃이 한창이었다.
당시엔 중부지방엔 아직 벚꽃이 피기 전이어서 갑사의 벚꽃이 너무 반가웠다.
올봄 첫 벚꽃이다.
고즈넉하면서도 단정한 갑사 경내를 관통해 담장 모퉁이에 난 적은 통로로 나가면...
바로 계룡산 산행을 시작하는 지점이 나타난다.
안내판이 너무 잘 되어 있어서 걱정하지 말고 갑사를 여유있게 둘러보며 걸어도 이정표를 금방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내가 갈 방향은 '금잔디고개'!
'2.3km라면 가쁜하게 갈 수 있겠다' 감깐 생각했다.
물론, 이 생각은 과신이긴 했다.
산에서는 늘 과신은 금물이다.
숫자로 표기된 거리만 가지고 만만하게 생각했다간 큰코다치는 일이 종종 생기는데, 계룡산도 그렇게 만만하게 생각할 산은 아니었다.
계곡을 오른쪽으로 혹은 왼쪽으로 끼고 계속 걸었다.
거칠면서 크지 않은 회색빛 이 돌들은 계룡산에서 처음 본다.
이런 돌이 산너머 동학사 근방까지 이어져 있다.
초반부에 용문폭포도 지났다.
계룡산에서 꼭 보고 지나가야 아름다운 계곡 중 하나란다.
물소리가 시원하다.
그러다가 가파른 비탈에 세워져 있는 계단도 올라갔다.
가쁜 숨을 쉬면서 올라와 까마득한 밑을 내려다보니, 계단을 올라오면서 힘들었던 게 더 실감이 났다.
그러고는 다시 이어지는 계곡!
여름에 온다면, 시원한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면서 걸을 수 있겠다.
이날은 흐려서 걷기가 나쁘지 않았지만, 한여름이라 해도 나무그들이 짙게 드리운 이 코스는 너무 덥지 않을 것 같다.
금잔디고개를 1km 앞둔 곳부터는 가파른 오르막이다.
얼마남지 않은 거리조차 쉬이 여길 수 없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래도 산행에는 늘 끝이 있는 법!
아무리 높고 비탈이 가파르다 해도, 열심히 걸으면 늘 목적지에 도달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드디어 '금잔디고개'다.
헬기장을 겸하고 있는 이곳은 고개라기보다 광장이고 해야 할 만큼 너른 평지이다.
우리는 금잔디고개에 도착한 뒤에는 배낭을 내려놓고 땀을 닦았다.
이곳은 동학사에서 갑사로, 혹은 갑사에서 동학사를 향해 산행을 하는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어주는 곳이다.
이제 남매탑을 향해 가자!
금잔디고개를 향해 올라오면서 반대쪽은 어떨까, 궁금했는데 반대쪽도 만만치 않다.
우리는 내리막이다.
그래서 산에서는 내리막이라고 너무 좋아하거나 오르막이라고 너무 풀죽지 않는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고, 내리막 뒤에는 반드시 오르막이 있다는 걸 가슴깊이 깨닫게 도와준 존재는 산이다.
드디어 남매탑이다.
크기가 다른 두 탑이 정겹기만 하다.
남매탑을 지나면 계속 내리막이다.
동학사쪽 계곡도 물이 맑고 창창하다.
계룡산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계룡산은 계곡물이 마치 용처럼 구비구비 산을 휘감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동학사탐방로 기점'이라는 이정표가 나타난 것으로 보아 이제 정말 다 내려온 것 같다.
군데군데 약간 힘든 코스가 있지만, 결코 힘든 코스는 아니다.
딱 반나절이면 할 수 있는 코스이니, 산행에 자신없는 분들께 권하고 싶다.
아침을 먹고 산에 오르면, 하산해서 산아래 맛난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이 풍경은 동학사에서 찍은 것이다.
동학사 지붕 너머로 보이는 산이 계룡산이다.
나는 산허리를 돌아 이곳으로 왔지만, 계룡산의 규모를 짐작케 해주는 퐁경이다.
다음에 계룡산을 간다면, 욕심을 내어 좀더 긴코스를 걸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