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유도화 이야기

풀, 꽃, 나무 이야기



지렁이들이 꿈틀거리는 유도화 화분을 뒤집어 뿌리를 탈탈 털어, 그 많은 지렁이들을 모두 흙으로 돌려보내고 다시 심은 유도화는

결국 죽고 말았다.

 

옆에서 "그냥 함께 살게 내버려두라"는 하늘풀님의 말은 들은 척도 않고 얼굴 찌푸려가며 난 지렁이들을 모두 털어냈다.

화초는 좋아하면서도 지렁이는 질색하는 걸 보면, 여전히 부족한 게 너무 많은 것 같다.

 

그 때, 죽어가고 있는 유도화의 줄기들을 썩둑썩둑 잘라 물에 뿌리를 내려, 다시 화분에 심은 지 4-5년은 된 것 같은데, 그 사이 한번도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던 유도화 피운 꽃이다.



이건 몇 년 전 사진이다.

이 유도화는 친구 집에서 잘 자라고 있다. 

사실, 이 아이는 내가 '구한' 것이다.

 


<우리 집 유도화 어렸을 때 모습>


프랑스 남부, '몽쁠리에'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뭐니뭐니해도 유도화였다.
사람 키보다 웃자란 유도화들을 시내 곳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는데, 유도화를 좋아하셨던 부모님께 이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하는 걸 참으로 안타까워 했었다.

 

얼마 전까지 내가 키웠던 이 유도화 바로 '몽쁠리에' 길가에 삽 같이 예리한 것에 허리를 깊이 베인 채 사람들의 발길에 채이고 있던 것을 그냥 돌아서지 못하고, 흙을 맨손으로 썩썩 파헤쳐 캐어 온 어린 줄기의 아기다.

나는 그것을 캐면서 손톱 밑을 파고드는 통증보다도 더 그의 허리에 난 상처 때문에 몸을 부르르 떨었었다.

 

그러다, 그것을 배낭에 짊어지고 이사를 했었고, 큰 화분에 그 뒤에도 한참을 키운 것은 주인여자에게 주고 가지를 정리하면서 뿌리를 내린 것들 중 하나는 가지고 돌아왔다.

 

어린 시절에도 우리 집에는 부모님이 키우시는 유도화가 있었다.

겨울이면 어김없이 집안에 들여 놓았던 유도화에 우리 자매들은 해마다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을 했었다.
집안에 들여 놓은 화초들 중 유일하게 초록 잎을 무성하게 달고 있던 유도화가 없었다면우리들의 크리스마스는 그만큼 즐겁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다 크리스마스조차 시큰둥해져 더 이상 아무도 거기에 장식을 하지 않았는데, 그 뒤로는 그의  존재감마저 느끼지 못해 까맣게 잊고 있던 것을, 이것을 키우면서야 '우리 집에 있던 유도화는 어떻게 되었더라?'궁금해졌다.

 

유도화는 어떻게 되었냐고 뜬금없이 묻는 내게 "한참 전에 죽었잖아!" 대답하시는 어머니는 참으로 어이없다는 표정이셨다.
나는 그때서야 유도화가 죽은 줄도 모르고 있었다는 걸 알았고, 너무나 무심했던 사이, 귀중한 어떤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은 상실감으로 잠시 멍했었다.
그래서 더 이 유도화는 빨간꽃이나 흰꽃이 피길 바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의 간절한 소망에도 불구하고 분홍꽃이 피었고, 분홍 꽃을 본 그 첫 아침에는 당혹스러움에 가슴이 서늘했었다.

 

옛날 유도화와 꼭 닮은 그것은 자꾸 나의 기억을 붙들었다.
끊임없이 기억들을 교차시키는 유도화를 보면서 오늘은 프랑스의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온 것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더 너머, '빤짝이'를 달고 있던 어린 소녀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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