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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멈춰 서서

특별한 손님의 방문, 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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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수년 전 어머니께서 들고 오신 상추 속에 있던 달팽이 모습이다.

 

어머니는 여름에 우리 집을 방문하실 때면 뜰에서 직접 키우고 계신 상추를 한 웅큼 가져 오시곤 한다.

농약을 안주니, 달팽이가 얼마나 많이 생기는지 모른다며, 이 상추를 뜯으면서도 달팽이를 엄청 많이 잡았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씀하셨지만,

엄마가 달팽이를 '잡았다'는 건 '잡아서 죽였다'는 뜻이란 걸 잘 아는 나는 그랬었냐며 웃음으로 반응했지만, 달팽이를 잡아 죽이는 어머니의 엽기적인 모습이 떠오르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상추를 먹으려고 씻는데, 상추잎 속에 작은 달팽이 한 마리가 있는 것이 아닌가!

엄마의 눈에 띄지 않아 겨우 목숨을 구한 달팽이가 대견스러운 마음이었다.

"넌 할머니한테 걸렸으면 바로 죽었어!"

유리 그릇에 집을 만들어 주고 상추 잎을 하나 넣어 주었다.

그리고 이름을 '팽이'로 지어 주었다.

 

하지만 난 팽이를 애완동물로 키우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동물을 애완용으로 키우는 것에 반대한다.

조금 돌보다 더위가 한풀 꺾이면 팽이를 동네 하천 변에 놓아 줄 생각이었다.

목숨을 노리는 천적들이 있을 테지만, 다른 달팽이 친구들과 어울려 자연 속에서 살도록 해 주려고, 그때까지 우리 집에 온 손님으로 함께 잘 지낼 생각이었는데...


그런데 바로 그 다음 날, 상추잎과 함께 담아 놓은 그릇에 팽이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도대체 달팽이가 느린보라는 말은 누가 했는지 모르겠다.

식탁 위에 놓은 그릇에서 재빨리 사라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팽이를 다시 발견한 것은 그로부터 몇 개월 더 지난 가을 어느날, 백화등 잎들이 수북이 쌓인 화분 위에서였다.


낙엽을 약간 들추자, 팽이의 후손들이 분명해 보이는 작은 달팽이들이 낙엽들 틈에 빽빽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에 질린 나는 달팽들을 낙엽 채 썩썩 걷어 얼른 하천가 풀섶에 풀어주었다.  

풀어주었다는 표현보다는 집에서 내쫓았다는 표현이 더 적당할 것이다.

목숨을 노리는 천적들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런 뛰어난 번식력이라면, 충분히 생태계에서 자기 위치를 차지하며 살아갈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우리 집에서 달팽이 손님들은 떠났다.


그 후에도 여전히 한살림에서 배달된 야채 속에서, 또 어머니께서 들고오신 야채 속에서 달팽이가 발견될 때가 있다.

그러나 얼마간 돌봐야겠다는 생각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ㅠㅠ


그때 그 달팽이들은 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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