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득, 멈춰 서서

추억의 강 이야기

반응형


<오픈 스쿨 위에서 바라본 학의천의 전경>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안양의 '학의천'가다. 저녁 때는 하천을 따라 자주 산책하는데, 이런 삶은 오랜 내 숙원이었다.


나는 한강 변에 위치한 학교를 다니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리고 나이가 좀더 들어서는 한강가로 산책나가는 것을 즐겼다. 강가를 걷거나 강둑에 앉아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햇볕 맑은 봄날, 물안개 푸슬푸슬 피어오르는 아침 강을, 한여름 불볕 더위를 식혀주는 저녁 강변을, 가슴조차 서늘하게 적시는 가을 물빛을, 그리고 쨍하고 추운 한겨울, 강둑에 앚아 손을 호호거려가며 얼지 않고 흐르는 깊은 강물을 바라보는 걸 정말 좋아했다. 


그러다 몽쁠리에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했을 때, 왠지 모르게 답답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는데, 나는 오래도록 그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아를르(Arles)를 방문했을 때, 도시의 허리를 크게 휘감으며 흐르고 있는 론(Rône)강을 보고서야 그 답답함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나는 도시를 구경하던 발길을 멈추고 한참을 론강 둑에 앉아 강물을 바라보았다. 먼 시절, 한강 둑 위에 앉아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던 그 때처럼, 그렇게 앉아 한참을 있었다.


몽쁠리에에는 강은 없지만, 지중해변에 인접해 있어서 시내버스로 불과 20분만 가도 바다를 볼 수가 있었다. 그러나 바다가 가까이 있다는 것은 내게는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했다. 한국에서도 바다는 내게 너무나 특별한 장소였기 때문이리라. 아무튼 작게 흐르는 운하 변이라도 아쉬운 대로 나가 앉아 있곤 했지만, 여전히 마음의 서운함은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런 심정을 담은 편지를 한국의 한 친구에게 보냈다.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러 갈 도시는 강이 흐르는 곳이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북부의 릴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릴로 이사를 한 얼마 후, 다시 그 친구에게 릴의 생활을 담은 편지를 띄웠다. “이곳에도 강은 흐르지 않는다”는 말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러 날이 흘러, 그 친구로부터 답장이 왔다. 시를 쓰는 그는 내게 시 한 편을 보내왔다.  


- Lille 흐르는 -


Lille에는 

강이 없어 

강이 없다는 건 

비가 없다는 건가 

그러면 추억도 없다는 건가 


서울에는 

한강물을 따라 

나이 30쯤 

사색도 함께 흘러 

흐르며 묻곤 하지 

사람의 마음에도 강물은 흐르는 건가 


도심 한가운데를 걷다가 

교정의 후박나무 그늘 아래서 

고요히 책을 읽다가 

황혼이 물드는 창가 

혼자 저녁식사를 하다가 

가만히 

주술처럼 

눈을 감고 

마음에 귀 기울이면 


듣게 되지 

멀리 Lille에도 

흐르는 

한강물 소리 


서울에는 

한강물을 따라 

나이 30쯤 

사색도 함께 흘러 

흐르며 묻곤 하지 

내 마음에 흐르는 강물소리는 

어디까지 가 닿는가 

가 닿고 있는가,고 


이 시를 받고 나서야 릴에 강이 없다는 것이 위로가 되었다. 그 친구는 마음속에 강을 품고 사는 법을 내게 가르쳐 준 최초의 사람이었다. 나는 삶에는 충족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 부족한 그대로를 마음 속 깊이 끌어안고 사는 삶을 배우며 릴에서 꼭 4년을 살았다. 그렇게 내 마음 속 깊은 소망은 인생에서 비껴나는 듯했다. 


그러나 귀국해, 이곳 안양으로 이사를 왔는데, 바로 우리 집 옆에 강이 흐른다! 나는 넓지는 않지만, 안양천으로 이어지는 '학의천'이라는 천변에 살고 있다. 일부러 고른 것이 아니었다. 집근처에 하천이 있다는 건 이곳에서 생활을 시작한 뒤에야 알게 되었다. 소원은 늘 불현듯, 이렇게 들이닥치듯 이루어진다. 


특히, 학의천은 10여년 전에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고, 우리나라 걷고 싶은 100대 길에도 뽑힌 아름다운 길이다. 나는 왜가리, 백로, 터오리 같은 물새들이 오가는 그림같은 풍경의 학의천가를 산책하며, 가끔씩 이게 진정 꿈이 아니라는 사실에 감동하곤 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