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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멈춰 서서

7년만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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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글은 2006년 암수술을 받은 몇 달 뒤, 병문안을 온 한 친구와의 추억에 관한 이야기다.

 

그녀를 다시 만난 것은 꼭 7년만의 일이다.

지하철에서 내려 이제 버스를 타러 갈 거라는 전화를 받고나서부터 나는 제대로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집에서 이렇게 안절부절하지 못할 바에야 버스정류장에 가서 기다리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고

슬리퍼차림으로 나가 정류장에 앉았다.


생활이 팍팍하다는 이유로,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만날 짬을 서로 내지 못하고 있던 차였다.

그녀를 알게 된 것은 대학 4학년 겨울, '사회진출모임'에서다.

'노동자'가 되겠다는 야심만만한 계획을 갖고 있던 나는 

공활 3달만에 포기를 했고 그녀는 그 물길을 따라 '정말 노동자'가 되었다.

그 후, 난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고 그리고 이혼을 했다.

그녀는 계속 노동운동을 했고 거기서 만난 남자와 결혼을 했고, 그리고 아이를 낳았다.

그녀가 첫 아이를 낳았을 때 나는 대학원에 다녔고 프랑스로 떠났다.

그렇게 몇 년 뒤 잠시 만났을 때, 그녀는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그때 보고 꼭 7년만이다.


그녀를 생각하면 저 먼, 꿈많던 시절의 열정과 사랑들이 떠올라 가슴이 아팠다.

똑같은 지점에 함께 서 있었던

어느 지점에서부턴가 한 발짝씩 서로 발걸음을 내딛으며 세월을 빠져나왔는데

이렇게 세월 한참 흘러서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거둘 수가 없어

그래서 항상 가슴이 아팠다.


버스를 기다리다 마음은 먼 시절로 썩 물러나 앉아 나도 어느새 꿈많던 그 시절 소녀가 되어 

그때 그녀를 기다리는데,

우당탕탕 그녀보다 먼저 버스를 달려 내려오는 그녀의 세 아이들을 보는 순간

다시 난 현실 속의 그녀를 본다.

고단한 삶 속에서도 네가 여전히 밝고 기운찰 수 있는 건 

바로 저 천진스런 아이들 때문이었겠구나 하면서,

저들이 네가 삶 속에서 가장 아끼는 보석이겠구나 하면서,

하지만 애써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도 썰물처럼 마음 한구석을 - 쓸어내리는 

슬픔을 거둘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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