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돌로 된 상자는 내가 약통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매일 먹어야 하는 약들을 담아놓고 쓰는데, 이것은 애초에는 담배곽이었던 것이다.
곱돌로 만든 이 담배곽은 할아버지의 물건이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할아버지의 물건으로 그저 책꽂이 위에 놓여 있던 것인데, 내가 어렸을 때도 존재했던 것이다.
나는 언제부터 이 물건이 존재했는지 모른다.
할아버지께 여쭈어 보아, 나는 이 물건이 곱돌로 만든 담배곽이라는 사실을 벌써부터 알고 있었다.
그리고 뚜껑은 깨져서 없어졌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나는 어렸을 때도이 상자를 가지고 싶었지만, 할아버지께 달라고 하지는 않았다.
세월이 한참 흘러,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이 물건은 자연스럽게 내 차지가 되었다.
뚜껑도 없고 둘레는 우뚤두뚤 이가 많이 나갔지만, 상자는 여전히 너무 멋지다.
그러던 중, 안양박물관에 갔는데 거기에 바로 이 담배곽이 있다.
뚜껑까지 한 세트가 잘 갖춰져 있다.
나는 곱돌 담배곽의 갖춰진 모습을 비로소 보게 되었다.
내 것과 다르게 깨진 곳 없이 아주 잘 보존된 모습이다.
그 옆에 곰방대가 있다.
나는 담배곽에 기다란 담배 가치를 담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 모양으로 보아, 담배곽에는 종이에 만 담배가 아니라 담배잎을 담는 통인 모양이다.
안양 박물관 로비에는 바로 이 곱돌 담배곽과 곰방대, 그리고 나무로 만든 재털이가 전시되어 있다.
재털이가 엄청 크다.
곰방대 뒤에는 옥으로 만든 장치가 꽂혀 있다.
입 안에 넣을 때 느낌이 좋도록 하기 위한 장치인 것 같다.
팔각형의 재털이 둘레에는 건곤감리 같은 음양의 괘가 새겨져 있다.
모든 물건이 정성들여 만든 느낌이 드는 옛날의 생활소품이다.
나는 무엇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곱돌 담배곽의 원래 모습을 확인하게 되어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