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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낯선 세상속으로/브르타뉴

바바라 성녀를 만나러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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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 내륙, 깊숙히 자리한 ‘몽타뉴 누와르’는 유명한 산악지역이다. 

몇박며칠, 잠을 자면서까지 여행하기 힘든 그 지역을 굳이 찾아간 것은 ‘생트-바르브 예배당’(La chapelle Sainte-Barbe)을 보기 위해서였다. '바르브'는 서양 여성들의 이름으로 유명한 '바바라'의 변형된 형태다. 

이곳에 꼭 가보고 싶었던 것은 프랑스에서 한번도 본 적 없는 독특한 건축양식의 예배당 사진을 관광책자에서 처음 보았을 때였다.

 게다가 이곳은 매년, 브르타뉴에서도 유명한 참회축제가 열리는 곳이라고 했다. 

이러한 이유로 '생트-바르브 예배당'은 무척이나 신비스럽게 생각되었다. 

참회축체는 일정상 구경을 가지 못했지만, 여름에만 개방한다는 예배당은 며칠 잡으면 못가란 법은 없어보였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여행을 하고 있던 우리는 ‘생트-바르브 예배당’을 위해 거쳐야 하는 '르 파우에트'를 가기 위해서조차 다른 도시에서 하룻밤을 자고, 그 다음날 '르 파우에트'에 도착했다. 

물론, ‘생트-바르브 예배당’과 그 근처에 있는 또 다른 유명한 성당을 한 군데 더 가고, 다시 '르 파우에트'에서 하룻밤을 더 자고 ‘몽타뉴 누와르’라는 이 산악지역을 나올 계획이었다. 

이 지역은 ‘몽타뉴 누와르’(검은 산)'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어둡고 깊은 산속이 분명해 보였다. 



‘생트-바르브 예배당’을 가기 위해서는 ‘르 파우에트’ 시내에서 걸어서 약 30분 정도, 오솔길을 지나 산길을 조금 올라가면 된다. 

산길이라지만 야트막한 비탈길로, 우리나라에서 산 속 깊숙히 위치해 있는 사찰들을 수없이 다녀본 터라, ‘생트-바르브 예배당’으로 가는 길은 전혀 힘들지 않았다. 

브르타뉴에서는 물론, 프랑스에서조차 산속에 외따로 성당을 짓는 일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어서, 이 예배당은 유명하다. 

종탑이 건물과 분리되어 따로 있는 것도, 예배당에 접근하기 위해 지나야 하는 깊은 돌계단도 모두 성스럽고 신비스러운 인상을 주었다. 



예배당은 매우 좁고 작은 터전 위에 자리잡고 있다. 

바바라 성녀의 이름을 딴 예배당답게 내부에는 그녀의 삶이 스테인글라스로 장식된 창문들이 있고, 성녀의 조각도 마련되어 있었다.



바바라 성녀는 불과 사고, 돌연사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한다고 한다. 

이런 까닭에 그녀는 소방관, 광부, 해병, 포병의 수호성인이다. 

약 3세기에 살았던 바바라 성녀는 터어키 출신의 이교도였다. 

그녀는 기독교로 개종을 하는데, 아버지가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과 결혼을 시키려고 하자 이에 완강하게 저항했다고 한다. 

이에 분노한 그녀의 아버지는 망치로 딸을 때리고, 부서진 유리조각들 위에 굴리고, 이어 소금 위에 굴리는 등의 고문을 가한다. 

그래도 의지를 꺾지 않자, 분노에 눈이 먼 그는 마침내 딸을 참수하고 만다. 

당시 바바라 성녀의 나이는 16세였다. 이 순간 아버지는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에 맞아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고 한다.



나는 천 800년 전, 바바라 성녀의 이야기속에서 오늘날도 여전히 많은 국가의 여성들에게 자행되고 있고 ‘명예살인’의 흔적을 본다. 

아버지나 남자 형제들이 가문을 치욕스럽게 한 행동을 했다고 여성들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있지만, 벌을 받은 남성은 한명도 없다는 외신을 읽은 적이 있는데, 바바라 성녀 역시 이런 관습의 희생자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저항한 어린 소녀의 삶을 생각하니, 엄숙하고 숙연한 마음이다.

애초 '생트-바르브 성당'을 구경하기 위해 출발한 여행이었는데, 막상 생트-바르브 성당에 도착해서는 '바바라 성녀를 만나러 내가 여기에 왔구나'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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