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 때였던가?
그 해 크리스마스, 꼭 며칠 전 갑자기 어머니가 편찮아 병원에 입원을 하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갓난 아기인 남동생은 어머니와 병원에 있었고
직장과 어머니 간호로 아버지는 얼굴조차 보기가 힘들었고
올망졸망한 우리 세 자매만 덩그러니 집을 지키며 여러 날을 보내고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언니가 동생들을 돌본다고 해봐야 얼마나 돌볼 수 있었으련만,
그래도 주인집 아주머니에게 밥 짓는 것을 배워 동생들을 먹인 사람은 바로 언니였다.
그 해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처음으로 언니는 쌀을 씻어 허리 깊은 아궁이에 냄비를 걸고 밥을 지었었다.
그러나 첫번째 지은 밥은 새까맣게 숯덩이를 만들고는
언니도 나도 밥을 못 먹게 된 것보다 엄마에게 혼날까봐 가슴을 졸였다.
그리고 다시, 새로 어찌 밥을 지어서는 우리 자매들은 깔깔거리며 그 밥을 먹었다.
그 바로 전 해만 해도 어머니는 크리스마스를 기념해, 색종이로 집안을 장식하고 특별음식도 만들어 주셨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장식이라야, 색종이로 엮은 고리들을 주렁주렁 벽에 매단 것이었고,
또 특별음식이라야 칼국수가 고작이었지만,
세상에는 발음조차 생소한 '크리스마스'라는 이렇게 즐거운 날이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 해, 어머니는 입원을 하셨고 우리들은 혼자 남았다.
산타 할아버지가 오실거라고, 그러니 꼭 산타할아버지를 보고 자야 한다고
언니와 약속을 하고 늦도록 TV를 보다가, 난생 처음으로
참으로 황홀하고 신기한 음악에 맞춰 사람들이 춤을 추는-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발레였던 것 같다-방송을 보다가
그 지루함에 절로 스르르 잠이 들어 버렸는데, 일어나보니 아침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 머리 맡에 커다란 사탕 두 봉지가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산타 할아버지가 왔다갔다고 사탕봉지를 들고 펄쩍펄쩍 뛰었고,
엄마, 아빠가 없어도 집 잘 보고 울지 않아서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준 거라고 입을 모아 재잘거렸다.
그날은 달콤한 사탕만큼이나 행복했던 크리스마스 아침이였다.
물론, 그 산타 할아버지가 아버지였다는 것은
아무도 일러주지 않았지만, 몇 해가 지나면서 자연스레 알게 되었고
또 어머니는 여전히 크리스마스 특별요리라며,
만두 같은 것을 빚어 우리들을 즐겁게 해 주었지만,
그 해, 그 아침이 내 생애 최고의 크리스마스였다.
나는 늘 크리스마스가 되면, 그날 그 아침을 떠올린다.
두렵고 슬픈 아이들에게 사탕 두 봉지는 격려며, 희망이었으리라.
나이가 한참 든 지금도 나는 그날 그 아침처럼 여전히 산타의 즐거운 선물을 꿈꾼다.
언젠가, 꼭 그 옛날처럼 내 머리 맡에 그렇게 희망과 격려의 선물이 놓여 있기를 꿈꾸며
또 크리스마스를 맞는다.
* 이건 2004년 크리스마스에 쓴 글이다.
이로부터 10년이나 지났다.
그리고 다시 크리스마스를 맞았다.
여전히 난 그해, 그 크리스마스처럼 산타의 선물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