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띠엔느 이야기
"안녕, 찌꺼!"
계단을 오르고 있던 나를 불러 세운 사람은 우리 주인집 둘째 아들 에띠엔느였다.
그는 올 9월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일주일 동안 있었던 학급캠핑을 막 다녀온 후였다.
"어머! 에띠엔느, 너 언제 돌아왔니?"
우리는 여기 식으로 볼에 뽀뽀를 하며 인사를 했다.
"어제"
"재미있었어?"
"응"
"너 이제 다 컸구나! 엄마, 아빠 없이 일주일 동안이나 여행을 하고!"
그는 제법 자랑스러운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에띠엔느는 이 집의 세 아이들 중 가장 수줍음을 잘 타는 아이지만,
자기네 현관문 앞을 지나는 내 발소리를 듣고 문을 열고 늘 먼저 인사하는 사람은 에띠엔느가 유일했다.
그들 부모 대신 아이들 저녁을 챙겨 줄 때, 도우러 오는 아이도 에띠엔느뿐이다.
요리를 하는 사람이 아버지이기 때문일까?
나는 직장일에 바쁜 그들의 엄마를 도와
아이들의 숙제를 봐 주거나 저녁을 준비해 주기도 하고
간혹 부모들이 외출하는 밤에는 그들을 재우는 일을 하기도 한다.
그가 유치원을 다닐 때의 일이다.
한 날 나는 그의 숙제를 봐 주고 있었다.
학교에서 적어준 짧은 동시를 읽어보는 것이 숙제였다.
몇 번 읽으라는 표시는 물론 없었다.
아직 글을 완전히 깨치기 전이라 그는 학교에서 읽었던 것을 기억해 가면서 더듬더듬 겨우 한 번을 읽었다.
나는 당연히 이제 본격적인 읽기를 시켜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래, 이제 다시 한 번 읽어보자!" 했더니, 한 번 읽었기 때문에 숙제를 다~ 했단다.
어이가 없었지만, 잘 달래서 좀더 읽혀야지 마음먹고
"에띠엔느야, 공부를 잘 하는 애들은 몇 번씩 읽어 본단다." 했더니,
"학교에서 많이 읽었어!" 하면서 팔짱를 끼고는 팩 돌아 앉는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나는 좀더 끈기를 가지고 다시 제안했다.
"그럼, 우리 학교 놀이 하자! 네가 선생님하고, 나는 학생하고.
네가 한 줄을 읽으면 내가 따라 읽을게.
네가 나한테 읽기를 가르쳐 주는 거야! 너무 멋지지 않니?"
나는 스스로 참 그럴듯한 제안을 했다고 마음 속으로 흐뭇해하고 있는데, 에띠엔느는
"너도 읽기 배우고 싶으면 학교가서 배우면 되잖아!" 라고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어이가 없어 '하하' 웃었고,
그를 더 읽게 하는 것에는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내 책상 옆에는 어머니 날,
에티엔느가 직접 그려 내게 선물한 그림이 하나 붙어 있다.
꽃이 두 송이 피어 있고, 그 위로 새가 날고 있는 그림이다.
에티엔느 그림 속에는 늘 새들이 날고 있다.
그 새들 속에서 나는 천진스럽고 자유로운 소년을 본다. (2002년 10월 12일)
* 그 뒤 꼭 10년 후, 다시 만난 에띠엔느는 이렇게 잘 생긴 청년이 되어 있었다.
아이들의 쑤~욱 자란 모습은 참으로 감동스럽다.
아래 사진은 몇 년 전 고등학생이었을 때의 모습!
대학생인 요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