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에 읽은 '만국의 노동자여!'나 '동트는 미포만의 새벽을 딛고'와 같은 책에 실린 백무산의 시들은 마치 시퍼런 칼같았다.
당시 우리나라 조선소 노동자들의 삶을, 우리나라의 노동현실을 생생하게 알게 된 것은 바로 백무산의 시들을 통해서였다.
그래서 그의 시가 정말 궁금했다.
아니, 백무산시인의 근황이 궁금했다.
긴 세월이 지나 그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을까?
백무산 시인은 시보다 시인의 사생활이 궁금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거대한 일상>을 읽었다.
그의 시집을 다시 펴본 것은 거의 30년만이다.
그러나 이 시집조차 2008년에 출판된 것이니, 지금으로부터도 8년 전의 시들이다.
'거대한 일상'을 읽으면서 여전히 세상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관심하는 그의 태도가 가장 반가웠다.
그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불쌍한 어린이 노동자와 삶터를 잃은 벌들과 사라져가는 갯벌과 미국의 아프칸 파병군인에까지 관심이 확장되어 있었다.
이 세계의 다양한 소수자에게까지 관심하는 그는 참으로 훌륭하다.
그런데 그 시들이 예전만큼 감동스럽지 않은 것은 왜일까?
그는 왜 세상의 이 많은 사건들에 자신도 의견을 보태야겠다고 생각한 걸까?
그래서 '나도 넥타이 매고' 가 좋았다.
그의 이야기가, 마음이 진솔하게 담겨 있는 시...
나도 넥타이 매고
젊었을 적 족집게다 용하다 이름났고
인물도 고와 삼동에 소문이 자자했다던
보살과, 정초에 절에사 마주쳤는데
내게 무얼 내밀며 선물이라고 웃었다
풀어보던 나도 웃었다
쉰이 넘도록 경찰 눈 피한다고 남의 것
빌려입은 양복에 맨 넥타이가 전분데
웬 넥타이냐 물었더니
올핸 넥타이 맬 일 있으니 지니고 있으란다
가마를 탈지 관용차를 탈지 어지 알겠냐고 또 웃는다
내가 타본 관용차는 법무부 소속 호송차뿐인데
넥타이 매고 호송차 타는 놈 사기꾼밖에 더 있겠냐했더니
입부정 탄다 눈 흘긴다
나도 이제 얌전하게 넥타이 한번 매고 싶다
코뚜레처럼 꿰기만 하면 중도주의자나
과격 이념주의자가 될 것 같아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그것
나도 올해엔 반들반들 구두도 닦아 신고
경운기 짐칸에 똥 누는 폼을 잡고 앉아
들바람에 넥타이 잔뜩 휘날리며
읍내 예식장에라도 가고 싶다
마흔이 넘도록 장가 못든 사람
이 마을 삼백년 마지막 예식에
우즈베끼스딴 신부 만나 벙글거리는 그 사람에게
손바닥 아프도록 박수라도 쳐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