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화단에 박태기나무 꽃이 함빡 피었다.
진분홍 쌀알만한 꽃이 다닥다닥 피어 있는 박태기나무 꽃은 보기만 해도 너무 에뻐서 배시시 웃음이 나온다.
박태기 나무는 유럽에서는 '유다나무'라고 불리는데, 유다가 목을 매 죽은 나무가 바로 이 나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목을 매서 죽기에 박태기나무 가지들이 너무 가늘지 않나?'
어린 시절 이웃집 화단에 박태기나무가 있었다.
나는 봄마다 이웃집에 피는 눈부신 박태기나무가 너무 부러웠다.
우리 집에도 저렇게 예쁜 꽃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는데, 얼마 뒤 우리집 뒬안 담장 아래에서 박태기나무가 자라나는 것이었다.
일부러 심지도 않은 박태기 나무가, 내가 그토록 욕심을 내었던 '예쁜 꽃나무'가 우리 집에서도 자라났다.
아름다운 꽃이 피는, 이름도 알지 못하는 이 나무는 내겐 '하늘의 선물' 이었다.
이렇게 '예쁜 꽃나무'가, 마치 기적처럼 저절로 우리 집에 왔다.
내 인생의 생각하지도 못한 뜻밖의 행운은 박태기나무가 최초였다.
이미 한번 아름다운 행운의 선물을 받았으니, 더는 뜻밖의 행운을 바라지 않았다.
인생에 한번 이상의 행운을 바란다는 건 너무 욕심스럽다고, 늘 생각했다.
너무 예뻐서, 그저 '예쁜 꽃나무'라고 불렀던 이 나무가 박태기나무라는 사실을 안 것은 한참 자라 어른이 된 뒤었고, 콩깍같이 생긴 열매가 바람에 날려 어디서고 씨앗을 잘 내린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그때 그 박태기나무는 하늘이 내게 준 선물이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어쩜,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인생의 두번째 행운의 선물을 이미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살아서 해마다 박태기나무의 아름다운 꽃을 보고 있으니 말이다.
다시 봄이 왔다.
그리고 다시 박태기 나무에 흐드러지게 매달린 꽃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