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중하고 고풍스러운 비트레(Vitré)의 요새성

여행, 낯선 세상속으로/브르타뉴



‘브르타뉴의 변방’(les Marches de Bretagne) 도시들이 그렇듯, 비트(Vitré)에도 유명한 요새성이 있다. 

이 성은 브르타뉴의 어떤 성보다 아름답고 완벽한 모습으로 복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비트레 성’(Château de Vitré)은 빌렌느강 발치 아래 위치한 두 계곡 사이에 높이 솟아 있는 넓은 편암 위에 세워졌다. 

이런 이유로 물이 없는 깊은 해자로 둘러싸여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성은 일에빌렌느 지방에서는  돌로 건설된 첫번째 성으로, 유적발굴 조사를 통해 그 축조 연대가 1060년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 세워진 성은 나무로 만든 것이었다. 

그것을 13세기에 들어, 앙드레 3세(André III) 남작이 돌로 다시 짓는다. 오늘날과 같은 커다란 둥근 망루를 위시한 삼각형태의 기초를 다진 건 바로 이때였다. 


15세기에 비트레 성은 다시 라발(Laval)가문의 ‘기 12세’(Guy XII)에 의해 더 넓혀진다. 

성채(le châtelet: 두 개의 탑 사이에 성문이 있고, 그 위에는 주로 주거공간이 딸려 있는 건물 형태)와 ‘마들렌느 탑’(La Tour de La Madeleine), ‘생-로랑 탑’(La Tour Saint-Laurent)이 세워진 것은 이 시기이다. 

이들 건물이 세워지면서 비트레 성은 오늘날의 위용을 갖추게 된다. 



성채의 웅장한 두 탑을 사이에 두고 깊은 계곡의 해자 위에 놓인 도개교(le pont-levis)는 특히 인상적이다. 

독특하게도 성문은 두 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좁고 작은 문은 보행자들이 드나들 때 사용되었고, 넓고 큰 문으로는 기사들과 짐수레들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한편, 1487년 프랑스의 공격을 받았을 때, 라발 가문의 ‘기 15세’(Guy XV)는 전투없이 프랑스 군대에게 성문을 열어준다. 

이로써 요새로서의 비트레성의 역할은 역사 속에서 끝이 난다. 

1530년대에는 르네상스식의 ‘작은 예배당과 회랑’(L’Oratoire et Les Loggias)이 세워지는데, 렌에 페스트가 창궐한 1564, 82, 83년에는 이곳이 브르타뉴 의회로 쓰이기도 했다. 



16세기 이후, 비트레 성은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어 가면서 그들의 주거지로 쓰이기도 하다가 방치되어 무너지고 만다. 

그랬던 것을 1820년 지방정부(departement)가 매입해, 역사문화유적으로 분류해 보호하고 있다. 

형무소로 쓰이기도 했고, 여러 번의 복원공사를 거쳐서 현재는 박물관과 비트레 시청으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