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의 몸을 가진 여성 ‘멜뤼신’의 전설

여행, 낯선 세상속으로/브르타뉴


프랑스 서북부에 위치한 '푸제르'(Fougères)를 방문했을 때,  성쉴피스(Saint-Sulpice)성당을 들러, 방어벽으로 높게 둘러쳐진 시내로 들어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푸제르성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성당주변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해자를 끼고 왼쪽으로 돌아 성쉴피스 성당으로 향했다. 푸제르성 둘레는 물로 가득찬 해자로 둘러 싸여 있었다. 

깊은 해자에 담긴 물에 비친 성의 그림자가 숭엄미를 더해 주었다. 

성쉴피스성당은 11세기에 지어진 것을 14세기에 불꽃양식의 고딕식으로 재건축하기 시작해, 공사가 완전히 끝난 것은 18세기에 이르러서였다고 한다. 

성쉴피스 성당은 규모는 작지만, 불꽃양식으로 장식되어 매우 화려한 느낌을 주는 성당이다. 



그러나 이 성당의 화려한 건축양식보다 더 내 관심을 끈 건 처마 끝에 매달려 있는, 얼굴부터 가슴까지는 여인의 모습을 하고 하체는 용의 형상을 한 ‘갸르구이’(gargouille)였다. 

갸르구이는 유럽의 고딕식 성당의 높은 처마끝에 붙어있는 석루조로서, 빗물을 건물에서 멀리 떨어지게 하려고 만든 괴물이나 용 등의 형상을 한 조각품을 일컫는다. 

나는 평소에도 석루조에 관심이 많다. 특히, 높은 처마끝에 불쑥 튀어나온 석루조를 파란 하늘과 함께 사진에 담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성쉴피스 성당의 이 석루조를 보면서는 푸제르성의 한 탑의 이름으로 붙여진 ‘멜뤼신’이 떠올라 더욱 관심이 갔다. 

멜뤼신은 이 지역에 전하는 머리부터 가슴까지는 사람, 몸통은 뱀모양을 한 전설의 여인이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멜뤼신이 태어날 때부터 이런 모습이었다고도 하고, 또 다른 전설에서는 남편에게 학대받는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아버지를 죽인 죄값으로 토요일마다 하체가 뱀으로 변하는 벌을 받았는데, 멜뤼신이 뱀으로 변할 때마다 푸제르성 지하에 스스로 몸을 숨겼다고 한다.

그러나 두 이야기 모두 멜뤼신은 빛나는 금발을 가진 아름다운 여인이었다는 것과 그녀의 비밀을 남편이 알게 되자, 용으로 변해 하늘로 날라갔다는 이야기는 공유하고 있다. 


한편, 일에빌렌느 지역에 전하는 한 전설에는 이복 오빠인 아더 왕에게 대항한 죄로 브로셀리앙드 숲에 갇혔다는 모르간의 이야기도 전한다. 

모르간과 멜뤼신 전설은 모두 가부장에 대항한 브르타뉴 여성들의 이야기다. 

난 이런 전설들 속에서 가부장에 대항한 옛날 여성들의 담론의 흔적을 본다. 

가부장에게 대항한 그녀들은 그것이 어떤 이유건 저주를 받아 흉찍스러운 존재로 변하거나 깊은 숲에 갇히는 벌을 받는다. 



갸루구이가 되어 성쉴피스성당 지붕의 처마끝에 매달려 있는 여인은 누굴까? 

갸루구이들은 하나같이 부정적인 존재로, 악마나 괴물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그녀는 무슨 이유로 저렇게 괴물의 한 종류가 된 것일까? 


브르타뉴의 변방에 위치한 푸제르성은 끊임없이 외세와 전투를 벌이고, 침략자들에게 수없이 함락당하는 역사를 간지한 곳이다. 

점령은 늘 방화와 노획과 강간으로 이어졌다. 

푸제르 시내를 둘러보는 내내 처연한 느낌을 거둘 수 없었던 건 푸제르의 참혹하고 어두운 역사적 배경 때문일까? 

아니, 어쩜 검은 구름이 낮게 드리운 도시 위로 오늘도 멜뤼신이 날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