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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멈춰 서서

독거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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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상주에 살고 있는 친구의 집을 방문했을 때, 뜰이 넓은 그녀의 집 처마 밑에 독거미 몇 마리가 집을 틀고 있었다.

집에서 독거미를 본 것이 얼마만이던가?

어린시절 부모님과 살았던 집 이후, 처음이었던 것 같다.


부모님과 살던 어릴 때의 집에는 넓은 꽃밭이 있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화초가꾸시는 걸 좋아하셔서 온갖 화초들이 계절마다 자기 모습을 뽐내곤 했다.

그런데 여름에는 왜 이렇게 독거미들이 꽃밭에 집을 짓는지 모르겠다.

특히, 키큰 장미나무들 근처에는 빨갛고 노랗고, 또는 형광빛을 발하는 진초록의 독거미들이 늘 얼기설기 솜씨도 좋아보이지 않는 집을 짓고 살았다.

나는 집에 독거미들이 사는 것이 너무 창피하고 싫었다.

독거미의 눈에 잘 띄는 자극적인 색깔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가까이 가면 물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무섭기도 했다.

여름에는 꽃밭 안으로 들어갈 엄두를 절대로 내지 못한 건 순전히 독거미들 때문이었다.

꽃밭 안에 3~4마리 정도는 늘 살았던 것 같다. 

그러나 부모님은 독거미에 신경을 전혀 쓰지 않는 눈치였다.

무엇보다 독거미 때문에 나는 여름에는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지 않았다.

독거미들과 함께 사는 모습을 친구들이 본다면, 나를 얼마나 우습게 생각할까?가 이유였는데, 친구들이 '독거미가 사는 더러운 집'이라고 우리 집을 생각할 것 같았다.

다행히 친구들 어느 누구에게도 우리 집 꽃밭의 독거미들을 들키지 않고 나는 어른이 되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친구 집에서 독거미를 본 것이다.

나는 무척 반가운 마음까지 들었다. 그러면서 예전에 우리 집에 살았던 그 독거미들을 떠올렸다.

지금 생각하면 화단에 독거미가 산다는 건 화단이 그만큼 다양한 생명체들이 서식하는 생태적인 공간이라는 걸 보여주는 증거였던 것 같다. 

독거미는 화단에 집을 짓고 사는 생명체였지만, 산앵두를 따먹으러 오는 새도 있었다.

우리 가족들은 산앵두를 다 따먹지 않고  이름도 알 수 없는 그 예쁜 새를 기다리곤 했다. 


나도 친구처럼 독거미가 집을 짓고 사는 뜰이 있는 집에 살고 싶다.

지금은 독거미들과의 즐거운 동고동락을 꿈꾼다.

  

위 사진은 상주 공검지 한 켠에서 발견한 독거미!

우와~ 이 아이는 엄청 크고 정말 멋지게 생겼다.

내가 본 독거미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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