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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꺼의 바느질방

엄마의 세모시 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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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장농 깊숙한 곳에 이런 것이 오랫동안 있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아주 오래 되었다는 걸 한눈에도 알아볼 만큼, 촌스럽고 검으틱틱했다.

 

"엄마, 이게 도대체 언제적 거야?"

나는 무엇보다도 놀라며 그것을 집어들었는데엄마는 반가운가 보다.

 

", 이게 여기 있었네! 엄마 시집올 때 해온 건데...

이렇게 세월이 흐르다니...."

엄마는 잠시 말꼬리를 흐렸다.

 

"아니, 이런 게 있었어! 이거 내가 할께."

보자 마자 갖겠다는 말에

"이걸 뭐하게?"하시면서도엄마는 선뜻 내게 그것을 내밀었다.

 

그렇게 시집올 때 지어왔다는 어머니의 세모시 한복을 처음으로 본 것은

내 나이 서른이 넘어서였고엄마가 결혼한지 서른네해가 넘은 어느 날이었다.

 

그때만 해도 딱히 꼭 뭘 해야겠다는

분명한 생각이 있어서 그걸 달라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보는 순간 엄마의 잃어버린 어떤 것 같아 덥썩 받아들었다.

 

"그걸 뭐하게?"하셨던 엄마의 말씀처럼세월은 또 흘렀다

그 사이 엄마는 환갑도 지나고, 여러 해가 더 지났을 때서야 

나는 솜씨 좋은 아주머니께 맞겨 윗도리 두 개로 만들었다.

당시, 빨아서 솔기를 뜯고풀을 하고 다림질을 하는 내내 묘한 슬픔을 떨칠 수가 없었는데

그것은 한 번도 입지 않은 듯, 새로 지었을 때 풀먹인 그대로 그렇게 세월을 훌쩍 넘은 그 옷 속에서 

자꾸만 엄마의 젊었던 시절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 때문이었다.

곱게 차려입고 나갈 틈 없었던 고단한 삶을 그대로 보여 주는,

뽀얗게 장농 속 세월의 때를 말끔히 벗고 내 앞에 놓여 있는 그것을 바라보는데,

가슴이 아렸다.


나는 여름마다 엄마의 모시 한복을 뜯어서 만든 옷을 쪽물들인 치마와 함께 종종 입고 나간다.

한껏 멋을 부릴 때, 즐겨 입는 옷이다.

그리고 며칠 전에는 당시에 옷을 짓고 돌려주신 자투리천들을 꺼내 바느질을 시작했다.

여름, 꼭 요맘 때만 할 수 있는 모시바느질을 위해 

올해는 엄마의 세모시 한복 자투리천을 가지고 조각보를 만들 생각이다.

그저, 이 모시만으로 하얀 조각보를 만들 계획이다.

올을 잡아 자르고 쌈솔을 위해 뼈인두를 이용해 솔기를 접고, 시침질을 하고...

어느새 50년도 더 지난 물건이 되어버린 세모시 조각들 속에선 여전히 엄마의 인생이 느껴져 슬프다.

세월이 정말 너무 빨리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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