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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한 정보

렌의 '샹리브르'(Les champs Libres)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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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에 문을 여는 일요일, 2시가 임박한 시간이면 샹리브르의 시설들을 이용하러 오는 시민들로 입구는 항상 이렇게 붐빈다.>


프랑스에서 생활할 때, 자주 가는 곳이 동네 시립도서관이었다 시립도서관이 문을 닫는 목요일과 일요일에는 렌 시내의 ‘샹 리브르’(Les champs Libres)라는 문화공간에 있는 ‘렌메트로폴’ 도서관을 갔다. 통칭, '샹리브르' 도서관이라고 부르는 이곳은 우리 집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려면 버스를 타고 지하철까지 갈아타가며 복잡하게 가야 하지만, 지름길을 이용하면 30분이면 걸어서 갈 수 있다. 전통적인 브르타뉴식 가정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골목을 지나, 키 큰 보리수들과 개암나무들이 가로수로 펼쳐진 길을 따라 걷다보면 어느 새 ‘샤를르 드 골’ 광장에 도착한다. 



‘샤를르 드 골’ 광장은 ‘샹 리브르’ 건물 앞에 있는 큰 광장이다. 이 광장에서는 쉼없이 렌 시의 주요 행사들이 벌어진다. 차없이 사람들만 오갈 수 있는, 이렇게 넓은 광장이 시내 한복판에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그래서 ‘자유로운 공간들’이라는 뜻의 ‘샹 리브르’(Les champs Libres)는 ‘샤를르 드 골’ 광장에만 접어들어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샹 리브르’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로운 공간에 들어온 걸 실감하게 된다.


이름이 뜻하는 것처럼, 비장애인이나 장애인 모두, 자유롭게 즐길 수 있도록 시설을 갖추었다는 것이 이들이 내세우는 ‘샹 리브르’의 가장 큰 특징이다. 문턱이 없는 정문을 드러서는 것부터가 너무 쉽다. 청각, 시각, 지체 장애인들이 모두 쉽게 움직일 수 있도록 안내판과 구체적인 장소를 말해주는 건물 모형이 설치되어 있다. 무엇보다 신청을 하면, 안내자의 인솔을 받을 수도 있다. 실제로 가이드를 동반해 시각장애인들이 도서관 곳곳을 오가는 것을 발견하기가 어렵지 않다. 


특히, 샹 리브르 도서관에서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점자와 음성서비스가 제공되는 시각장애인 전용공간이 있다. 이곳에 있는 자료들은 점자로 출력도 받을 수 있고, 시각 장애인을 위해 음성으로 제공되는 잡지와 전자자료, 점자책이 7천여 편 준비되어 있다. 또 매달 하루는 <캄캄한 방에서 보고 듣는다>(Ecouter-Voir en Chambre noire> 라는, 영화를 소리로만 상영하는 행사가 펼쳐지고 있다. 


한편, 청각장애인을 위해서는 ‘뀔띠흐 수르드’(Culture sourde)라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데, 여기에는 청각장애인을 위해 대사가 적힌 DVD와 잡지, 책 등을 갖추어 놓았다. 특히, 음성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신문과 잡지 등, 각종 출판물들을 읽을 수 있도록 돕고 있으며, 청각장애인을 위해 ‘샹 리브르’에서 전시되는 모든 전시에는 간단한 텍스트자료를 갖추고 있다.



샹리브르 도서관을 자주 오가며, 내가 가장 감동하는 건 바로 책꽂이들이다. 책꽂이들은 휠체어를 타고 다니면서도 쉽게 자료를 빼고 꽂을 수 있도록 모두 낮게 배치되어 있다. 게다가 그 간격도 너무 넓어 휠체어는 물론, 침대차조차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하루는 도서관 안에서 전동 침대차를 스스로 운전하며 다니는 중증 장애인을 본 적이 있다. 그 사람은 침대차에 누운 상태에서 자유롭게 혼자 서가 사이를 오가며, 책을 살펴보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을 보면서는 한국의 우리 동네 시립 도서관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의 우리 동네 시립 도서관은 우선 책꽂이가 너무 높아 나처럼 키가 작은 사람은 가장 높은 데에 꽂힌 책을 뽑기조차 힘들다. 게다가 책꽂이 간격은 너무 좁아 휠체어가 드나들 엄두를 낸다는 건 상상도 할 수가 없다. 물론, 부탁을 한다면 사서들이 친절하게 책을 찾아다 주겠지만, 진정으로 장애인을 위하는 건 그들을 대신해 필요한 일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 스스로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시설을 마련해 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샹리브르 도서관의 책꽂이를 볼 때마다 했다.



또 한국의 우리 동네 시립도서관에는 장애인을 위한 엘리베이터는 없고, 휠체어를 올렸다내렸다하는 리프트만 존재할 뿐이다. 이런 시설로는 장애인들이 2층에 있는 신문과 잡지들을 볼 수 있는 '정기 간행물실'을 자유롭게 드나들기는 무척 어려워 보인다. 이런 불편한 상황에서 나는 리프트를 이용하는 장애인을 한번도 본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휠체어를 탄 장애인을 도서관에서 만난 적조차 없다. 


이런 점들을 생각하면, 선진국을 측정하는 척도는 '경제적으로 얼마나 부유한 나라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사회시스템을 갖추고 있는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동네만 해도 시차원에서 도서관을 계속 증설해 나가고 있지만, 새롭게 신설되는 도서관조차 장애인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떠나와서 좋은 건 이렇듯 다른 사람들 속에서 우리 모습을 더 잘 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경험을 샹리브르 도서관을 다닐 때마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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