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이 작아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던 유도화의 화분을 갈아 주었다.
겨울이 되기 전에 그것을 갈아 주어야 하는데하며 내내 쫓기고 있던 차였다.
아버지는 이맘 때면 화초들의 겨울준비로 늘 분주하셨다.
짚으로 감싸 주어야 할 것들을 챙기거나 선인장 화분들을 들여 놓으시고, 또 봄부터 가을까지 뜰에 심어 놓으셨던 동백이나 석류나무 등은
안에 들여 놓을 수 있도록 다시 화분에 옮기시면서 평생 화초들을 돌보셨다.
그러다 언젠가 석류나무는 죽었고 동백들은 여전히 부모님 곁에 있지만, 흙 속에서 뿌리를 활짝 펴며 살았던 삶은 오래 전에 끝이 나고 말았다.
<프랑스 세트 해안에 야생으로 자라고 있는 용설란>
아주 먼 어린 시절, 용설란을 구해오셔서 그것을 화분에 심으시며,
"이 선인장은 80살이 되어야 꽃을 피운다고 한다. 꼭 한 번 꽃을 피우고는 죽는다지. 나는 못 보겠지만, 너희들은 볼 수 있겠구나."
아버지는 부드러운 미소를 띄우시며 말씀하셨지만, 어린 마음에도 그 말씀은 짠하게 느껴졌었다.
그러나 나는 곧 잊었고, 한 번도 다시 떠오를 틈 없이 세월은 그렇게 흘렀다.
몇 해 전, 니스를 여행할 때였다.
그곳은 뚝이며 언덕이며, 곳곳에 용설란이 정말 대단했다.
늘 화분에 심어져 있던 것들만 보다가 야생 상태로 군집을 이루고 있는 대단한 몸집의 용설란들은 괴기스럽기까지했다.
그런데....
용설란들 틈에서 끝에 무언가 흉물스러워 보이는 것을 이고 있는 듯한 긴 장대가 높이 솟아 있는 것이 간혹 눈에 띄었다.
'저렇게 괴기스러운 것이 도대체 무얼까?'
바로 용설란 꽃이였다!
늘 꽃이라면 알록달록 화려하고 눈부신 어떤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던 내게 용설란 꽃은 나를 놀라고 당혹스럽게 하기에 충분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역시 꽃대가 나와 있는 것들의 줄기들은 석회빛으로 변해 있거나 이미 다 삭아서 흙이 되어 있거나 했다.
그 모습은 비장하고 자못 처절한 느낌까지 주고 있었다.
그때까지 한 번도 기억할 수 없었던 그 먼 시절, 용설란을 화분에 심으시며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나는 곳곳의 가게를 뒤져 용설란 꽃이 나와 있는 엽서를 구해 아버지께 보내드렸다.
물론, 아버지께서는 오랫동안 그것을 가까이 놓고 감상하며 즐거워하셨다.
<용설란 꽃, 프랑스 세트>
빠리 식물원에서도 용설란 꽃을 보았다.
나는 이 곳의 용설란 꽃을 아버지께 직접 보여드릴 기회를 꼭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었다.
그러나 올 봄, 아버지는 그만 사고를 당해 뇌를 다치셨고, 오랜 치료 끝에 천만다행으로 살짝살짝 거동하실 정도의 기력을 겨우 회복하셨다.
어쩜 아버지는 용설란 꽃을 못 보시고 돌아가실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마음 아픈 것은 아버지가 용설란 꽃을 못 보시고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진정으로 가슴 아픈 것은 먼 그 시절, "나는 못 보겠지만" 하시던 바로 그 때가, 아주 아주 한참 뒤 너무 먼, 먼 어느 날일 거라고 여겨졌던 바로 그 때가, 벌써 이렇게 세월 흘러 다가왔다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한다.
화분을 손질하는 아버지 곁에 바짝 앉아 눈을 동그리며 바라보던 그 어린 소녀의 아버지가 되어 오늘은 화초들의 겨울 준비를 한다.
큰 화분 속에서 비로서 유도화는 잎을 활짝 펴고 기지개를 펴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