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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만에 월정사 전나무 숲길을 다시 걷는다.
초겨울 이른 아침, 땅위를 살짝 덮을 정도로 내린 눈들이 전나무 그림자가 짙은 군데군데에 녹지 않고 남아 있었다.
암진단을 받기 꼭 한 달전 월정사 이 전나무 숲을 걸었다.
그 이후, 다시 1년 뒤에 다시 이 전나무 숲에 왔을 때서야, 나는 이 숲에서 죽은 전나무들을 발견했었다.
죽음 목전까지 가보고 나서야 주변에 존재하는 죽음이 보였다.
그리고 살아있는 것도 아름답지만, 죽은 존재도 아름답다는 걸 내게 처음으로 가르쳐 준 존재는 바로 이 숲의
죽은 채로 꼿꼿하게 서있는 전나무들이었다.
월정사 전나무 숲은 수백년 동안 건재한 전나무들과 죽어있는 나무들, 죽어서 썩어가고 있는 나무들이
함께 모두 존재해서 좋다. 이 나무도 수년 전에 월정사에 왔을 때 보았던 것인데, 여전히 이렇게 누워 있다.
그 사이 더 썩었지만, 여전히 아름답다.
아래는 그 옆, 몸통만 남은 죽은 전나무와 함께 찍은 사진...
그 사이 전나무들이 또 여럿 죽었다.
이 나무도 더 세월이 지나면 밑동만 남을 것이다.
요즘은 죽은 나무들에 더 눈길이 머문다.
월정사 전나무 숲엔 새로 심은 전나무들도 있었다.
죽은 나무들과 어린 전나무들을 함께 보니, '세월이 이렇게 흐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나무들이 자라는 것을 보면서 나도 나이를 먹고, 또 늙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도 늙어서 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죽은 전나무들과 살아 있는 어린 나무들을 보았다.
그렇게 나무들 틈에서 삶과 죽음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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