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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낯선 세상속으로/브르타뉴

브로셀리앙드(Brocéliande)숲의 전설속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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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셀리앙드(Brocéliande)숲은 대중교통으로는 여행하기 힘든 곳이다.

게다가 이끼가 잔뜩 끼어있는 키큰 나무들로 빽빽한 광대한 숲을 관통해 하루에 걷는다는 건 불기능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무서웠다.ㅠㅠ

그래서서 숲 깊숙히 위치해 있는 전설이 깃든 유명한 장소들은 안내인이 인솔하는 단체관광 프로그램에 끼어서 가기로 했다.  

역시 우리의 판단은 옳았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걷는 숲길은 무섭지 않았고, 무엇보다 여름 숲은 시원하고 걷기 좋았다. 

 

 

숲 깊숙히 들어서자, 브르통어로 ’다른 세상’이란 뜻이 담겨 있는 ‘브로셀리앙드’란 말이 실감이 났다. 

깊은 숲속에 세워져 있는, 흰 옷을 입은 여자 귀신이 나타난다는 ‘트레세쏭 성’(Château de Trécesson)이나 숲 한복판에 넓게 드리운 호수들처럼, 한번도 경험한 적 없는 풍경들은 내가 진정으로 ‘다른 세상’에  와 있다는 걸 실감하게 했다.  

 

브로셀리앙드 숲에 존재하는 바위, 샘, 계곡, 나무들은 신비로운 전설과 신화들로 가득 차 있다. 

프랑스의 다른 관광지와 달리, 꼭 봐야 할 것이 참나무이고 샘물이고 계곡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하나같이 전설을 가지고 있다. 

이것들 가운데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사랑과 배신과 복수의 내용이 담긴 전설들은, 특히 유명하다.

 

사랑하는 여인, 요정 비비안(Viviane)에 의해 보이지 않는 감옥에 영원히 갇히게 되었다는 불멸의 존재인 ‘메를랭’(Merlin)의 전설은 바로 이 숲에 전해 오는 이야기이다. 

그가 지금도 갇혀 있다는 ‘메를랭의 무덤’(Le Tombeau de Merlin)이라고 불리는 장소도, ‘비비안의 집’이라고 불리는 언덕도, 모두 브로셀리앙드 숲에 있다. 

 

 

숲 서쪽에 위치한 계곡은 ‘모르간’ (Morgan)과 관련된 전설로 유명하다. 

모르간은 아더왕의 이복 여동생으로, 브로셀리앙드 숲에서 살았다. 

‘돌아올 수 없는 계곡’(Le Val sans Retour)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계곡은 모르간의 저주로 신의가 없는 행동을 한 기사나 부인을 배신한 남성들이 이 안으로 들어서면 영원히 돌아나올 수 없게 된다고 한다.

 

 

‘돌아올 수 없는 계곡’, 바로 근처에는 ‘요정들의 거울’(Miroir aux fées)이라는 연못이 있다. 

이 연못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기로 맹세한 일곱 요정이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그녀들은 밤마다 물표면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며 즐거워했다. 

그러나 가장 어린 요정이 잘생긴 기사와 사랑에 빠지면서 그 약속을 깨뜨린다. 

화가 난 언니들은 어린 요정을 잔인하게 죽인다. 그 요정의 피가 흩어져 숲 전체에 틘다. 

 

 

이런 이유로 브로셀리앙드 지역의 흙이 독특한 자주빛을 띠게 되었다고 한다. 

‘요정들의 거울’ 전설은 이 호수뿐만 아니라 브르셀리앙드 지역의 자주빛 토양에 대한 전설까지 담고 있다. 

이 지역은 ‘자주빛 고장’(pays pourpre)이라고 불릴 정도로 브로셀리앙드의 자주빛 토양은 유명하다. 

그로 인해 이곳에서 생산되는 편암은 매우 짙은 자주빛을 띤다. 

렌의 전통 가옥들처럼 뺑뽕의 집들도 붉은 편암으로 지어졌는데, 그 빛깔이 더 짙다.

 

우리를 안내했던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 '뺑뽕'(pimpont)에서는 옛날부터 전해내려오는 전설에만 만족하지 않고, 매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전설 경연대회’를 연다고 한다. 

전해지는 이야기가 없는 장소에 새로운 전설이  덧붙여지고, 잔인하고 비참한 결말은 좀더 행복한 이야기로 변형되기도 한단다. 

 

어쩜, 세월이 훨씬 더 흐른다면, 지금의 전설들은 다르게 변형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만큼 브로셀리앙드의 전설들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을 사는 바로 이 숲속 사람들의 현재 이야기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니, 전설들이 매우 역동적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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