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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멈춰 서서

'싸리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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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침마다 내 잠을 깨우는 것은 아파트 단지 안을 쓰는 비질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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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잠을 자는 요즘같은 한여름이면, 더욱 이 비질 소리가 난다.

게다가 몇 주 전, 경비 아저씨가 바뀐 이후부터 비질 소리는, 아침은 물론 낮이나 오후 가리지 않고 잠시 잠시 나의 상념을 붙들곤 한다.

 

그 소리를 들으며 싸리비를 생각했다.

'싸리빗자루'일거라고...

 

싸리비

 

집 뒤, 야트막한 동산에서 아버지는 한 번씩 싸리를 꺾어와 빗자루를 매곤 하셨다.

가지들이 야무지게 묶여 빗자루가 된다는 것도 내겐 놀라움이었지만막 묶어 놓은 싸리비는 듬성듬성 초록 잎들을 매달고 있어 더욱 마음에 들었다.

어린 내 두 손아귀에는 잘 쥐어지지 않는 큰 빗자루를 엮고 나서 아버지는 남은 잔 가지들을 모아 나를 위해서도 작은 싸리비를 만들어 주시곤 했다.

그렇게 막 묶인 비로 마당을 쓸 때 떨어지는 빗자루의 싸릿잎들을 다시 쓸면서 나는 늘 깔깔거렸다.

 

그리고 아침마다 마당부터 골목 저 어귀까지 싸리비 자국 선명하니 쓸려있는 길을 따라 등교를 했었고밤새 함박눈이 내린 날 아침이면

뽀드득 뽀드득소리를 내며 학교를 갈 수 없어어느새 말끔히 쓸려 있는 마당을 망연한 눈으로 바라보곤 했었다.

그래서 아버지보다 먼저 일어나 꼭 한 날은 눈을 밟아보겠다고 늘 다짐했지만한 번도 그것을 해보지 못한 채 훌쩍 자라버렸다.

 

그 비질 소리를 들어본 것이 언제였던가?

나는 누워, 비질 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머리 속을 썩썩 쓸어내는 듯하기도 하고머리 속에서 키길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그 비는 싸리비는 아니었다.

플라스틱으로 엮은 빗자루가 아스팔트에 슬리면서 싸리비와 흡사한 소리를 만들고 있었다.

 

동네에 있는 관악산 자락에는 요즘 싸리가 한창일 것이다.

비를 만들어도 좋을 텐데생각하지만나는 쓸 땅 한 평 가지고 있지 못하다.

언젠가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싸리비를 엮어 나도 그 마당을 썩-썩 쓸면서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소망해 보지만,

그것이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어쩜 싸리비로 마당을 쓸면서 살았던 일은 많은 일들이 그랬던 것처럼 지난 기억으로 끝이 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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